그 많은돈 어디갔나/금융계의 추측 만발… 가설만 무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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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특정기업 지원하다 망해 잠겼을 것”/해외도피 사채업자에 크게 물렸다”/“은행생활 20년 이씨가 그런 모험했을까” 반론도
상업은행의 자체검사 결과가 발표됐지만 가장 큰 의문점인 돈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한두푼도 아니고 8백56억원에 이르는 거액이 왜 필요했으며,도대체 어디로 가 있는가.
일부에선 이희도지점장이 어느 특정기업을 지원했는데 그 기업이 망해 돈이 잠겼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씨는 9월말부터 다급하게 자금을 조달했는데 자기 소유의 아파트·땅을 거래기업인 우진전기 명의로 근저당을 설정해 주고 사조상호신용금고에서 4억원을 대출받아 우진전기에 주었다. 우진전기는 카스테레오를 생산하는 중소상장업체로 상업은행 명동지점을 주거래은행으로 하고 있다. 증권가에는 이씨가 지난달말부터 우진전기의 주식을 대량 매입했다는 풍문이 나돌고 있다.
즉 이씨가 어느 기업에 자금을 대주고 그 기업의 대주주와 짜고 공개되지 않은 내부정보를 이용해 주식투자를 하는 등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그 기업이 쓰러질 판이라 급전을 대주었고 돈이 거기에 잠겨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다른 가설은 가짜CD사건과 연관돼 해외로 달아난 사채업자 황의삼씨 등 일당에게 크게 물려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이 부분에 대해서 김명호은행감독원장과 김추규상업은행장이 이구동성으로 『현재까진 전혀 관계가 없다』고 밝혔으며,아무려면 은행원생활을 20년이상 하고 임원승진에 남다른 야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 특급점포의 지점장이 과연 위험한 가짜 CD를 중개했겠느냐는 분석에서 설득력이 약해진다.
그러나 가짜 CD사건의 주범인 황의삼씨가 상업은행 명동지점에 당좌예금을 개설해 놓고 이 지점장과도 거래가 있었던 점으로 미뤄 황씨와 어떤 형태로든 관련이 있을 가능성은 있다. 즉 가짜 CD를 만들거나 중개하는데 직접 관여하진 않았더라도 빼돌린 CD를 무더기로 유통시키는 과정에서 황씨와 연계됐을 가능성이 있으며 황씨 등이 CD를 거래해주면서 이 지점장의 약점을 알고 협박했거나 거액을 갖고 달아났을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 가설에 황씨가 인쇄업자를 시켜 가짜 CD를 만들어 팔았지만 역시 대량유통에는 한계가 있던 터에 이 지점장이 인천투자금융이나 롯데건설을 상대로 돈만 받고 CD는 건네주지 않은 점을 알아채고 이씨를 협박해 돈을 챙겨 달아났을 거라는 상황을 덧붙이면 더욱 이야기가 된다.
이씨가 은행지점을 옮길 때마다 수백억원의 자금이 같이 움직였다. 이는 이씨의 자금조성능력이 뛰어나다는 반증이지만,거꾸로 보면 이씨에게 발목이 잡혀 있는 돈도 꽤 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이씨는 사채 전주에게 높은 이자를 주기로 하고 자신이 근무하는 지점의 예금으로 끌어들여 수신고를 높였다. 그러나 이를 대출 등으로 운용하면서 역마진이 발생했고 빚을 얻어다 메워주었는데 이것이 눈덩이처럼 커졌을 거라는 이야기다.<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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