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못가린 대선법 개정 합의/박영수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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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태우대통령과 3당 대통령후보들은 18일 청와대 회동에서 대통령선거법 개정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이날 밤 국회에서 열린 3당의 대선법 개정협상 대표들은 두세시간의 논의 끝에 개정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한마디로 대통령과 3당영수들의 합의를 코미디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요즘 정치판이 국민을 웃기는 코미디를 비일비재 하게 연출해 국민들의 비웃음과 비아냥의 대상이 되어온 터에 나라의 최고 지도자들마저 그 반열에 가세하고만 셈이다.
김영삼민자·김대중민주·정주영국민당후보는 18일 청와대 회동에서 대선법의 부실을 너나없이 제기했다. 그래서 국회에서 의결한지 불과 14일만에 다시 고치자는데 합의했다. 그것도 그 법의 적용을 받는 대선공고일 이틀 전에 말이다.
그들이 국회에서 2개월여 이상 특위까지 만들어 연구·검토와 협상을 한 끝에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놓았던 법이다.
그들이 불평과 불만을 제기한 사항은 이미 역대 선거에서 늘 문제가 됐던 것들이다. 오죽하면 중앙선관위와 정부마저 법개정 당시 여러차례 개정의견서를 내 반영해 달라고 촉구했을까. 언론을 포함한 각계도 제대로 지킬 수 있는 선거법을 만들어내라고 기회있을 때마다 요구했다.
그런데도 3당은 철저한 당리당략에 따라 이런 의견제시와 여론을 외면한채 얼렁뚱땅 법을 만들었다.
그래놓고 차기집권을 노리는 3당후보들이 대통령과 대법원장 등의 면전에서 이의 개정을 합의했다니 코미디 치고는 압권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런 즉흥적이고 편의주의적 발상을 보인 3당후보들에 반해 법률가 출신의 3당 살무대표들은 대선법을 고치게 되면 그에 관계되는 법체계도 모두 손질해야 되는 시간적 촉박성 때문에 불가라는 법률적 사고방식을 택했다.
대통령과 3당대표들이 주고받는 말에 묵묵히 듣고만 있던 김덕주대법원장이 일어서면서 점잖게 한마디 충고했다.
『법을 고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드시는 분들이 이 점을 잘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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