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인척 관리(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우리 역사상 가장 탁월한 통치자로 평가되는 세종대왕의 치적은 그의 타고난 자질과 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자질과 능력을 인정하고 뒷받침한 부왕 태종의 힘이 컸다. 건국초기 왕자의 난 등 무수한 정변을 치르며 태조의 다섯째 아들로 왕위에 오른 그는 자신의 셋째 아들을 왕위계승자로 삼는데 주저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권력주변에 있는 친·인척을 모두 제거해 버렸다. 그 대표적 희생자가 심온이다.
심온은 소헌왕후의 아버지로 세종의 장인. 영의정으로 있던 태종 18년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 오는 길에 「역모죄」로 몰려 체포되자 자결하는 비운을 겪는다. 바로 사위가 왕위에 오른 세종 원년의 일이다. 당시 상왕으로 있던 태종은 심온이 명나라로 떠날때 배웅행렬이 수리에 이르는 것을 보고 괘씸한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하긴 자신의 형제도,장인도 그런식으로 희생시킨 태종에게는 권력주변의 친·인척은 모두 암적존재였다.
태종의 경우는 너무 극단적인 예지만 실제로 우리는 최고권력자 주변의 친·인척들이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된 사례들을 많이 보아왔다. 초대 이승만대통령은 다행히도 친·인척이 별로 없었지만 양자로 들어간 이강석이 마치 황태자처럼 행세한 일을 기억한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대통령의 친·인척관리는 아마도 모든 권력자의 수범이 될만하다. 그는 대학원에 다니던 조카가 어느날 갑자기 모회사의 부사장이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당장 그 회사에 세무사찰을 시키고 사장을 구속까지 했다는 일화는 지금도 하나의 미담으로 남아있다.
제5공화국에 들어와 우리는 여러가지 경험을 했다. 권력자 주변의 친·인척들이 하루 아침에 걸맞지도 않은 감투를 쓰는가 하면,이권이 있는 곳에는 항상 그들이 있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6공화국에서는 한때 친·인척을 배제하는 노력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초기의 그런 노력과는 반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일부 친·인척들이 정치권에 파란을 불러일으킨 일들이 적지 않았다. 이번 김복동의원 사건만 해도 그렇다. 수신제가야말로 통치자의 가장 큰 덕목중의 하나다.<손기상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