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유형(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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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유형지 시베리아」하면 얼른 떠오르는 것이 톨스토이의 명작소설 『부활』이다. 살인혐의를 받은 카튜샤가 시베리아로 유배되고 그녀를 찾아 시베리아로 간 네흘류도프에 의해 시베리아의 유형생활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것이다. 인육을 먹는일조차 심심치않게 벌어지는 시베리아 유형지를 가리켜 톨스토이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인간생활의 온갖 조건 밖에 놓여있는 곳」이라 표현한다. 우랄산맥에서 태평양 연안에 이르기까지 6백50만평방㎞에 달하는 광활한 시베리아는 토착민의 언어로 「잠자는 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무진장의 천연자원이 매장돼 있어 러시아제국은 일찌부터 그 개발에 눈독을 들였으나 기후 등 맞지 않는 조건이 많아 개발은 늦춰질 수 밖에 없었다. 19세기초부터 그곳을 유형지로 삼아 일반범죄자들은 물론 정치범들까지 유배시킨 것도 그들을 개발노역에 동원키 위한 한 방편이었다.
그곳이 우리에게 훨씬 실감있게 인식된 것은 60년대에서 70년대에 이르는 기간동안 사하로프·솔제니친·시냐프스키 등 구소련의 반체제 지식인들이 거의 모두 유형생활을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서방세계로 추방된 역사학자 아말리크는 65년 『시베리아 강제기행』을 발표해 그 내막을 최초로 폭로했으며 노벨상 수상작가인 솔제니친은 그것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수용소 군도』를 발표했다.
북한정권이 수립된후 김일성이 당시 소련의 협조를 얻어 그곳에 정치범수용소를 만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40여년간 그곳을 거쳐간 북한의 정치범들은 수십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고르바초프시대에서 옐친의 시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러시아의 정치범들은 모두 석방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북한의 정치범들은 아직도 수만명이나 남아 벌채 등 노역에 동원되고 있다니 아이로니컬한 일이다. 그들의 벌채지역은 15만평방㎞에 이르고 그 수익금은 북한 2,러시아 1의 비율로 나누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시베리아 유형 애국지사기념회는 옐친대통령의 방한을 맞아 40년대후반 시베리아 유형자들의 명단과 생사여부를 밝혀줄 것을 호소하리라 한다. KAL기 폭파사건의 진상과 함께 한국과 러시아간의 해결돼야할 문제 가운데 하나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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