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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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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근태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과는 상극이다. 같은 당에 오랫동안 몸담았지만 결코 상대방을 평가해주지 않는다. 1970년대와 80년대 민주화투쟁을 함께했던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팔순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서로 으르렁대듯이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DJ-YS 사이보다 더 나쁘다. 김 의원과 노 대통령은 단 한순간도 상대를 인정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김 의원은 노 대통령을 '짝퉁 진보'로 여긴다. 진보정책을 펴다가 느닷없이 신자유주의로 옮겨가고는 '실용노선'이라고 변명하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본다. 노 대통령은 김 의원을 '운동권 주류의식에 사로잡혀 정치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교조주의자'쯤으로 간주한다.

그런 김 의원이 13일 눈물을 흘렸다.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기 직전 정대철.정동영씨와 만난 자리에서다.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중도 포기한 뒤 5년 만에 또다시 불출마 선언을 해야 했던 그의 심정이 착잡하지 않을 리 없다. 배신감과 참담함, 원망과 자괴감이 그를 사로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눈물의 화학성분을 분석해 보면 노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았을까 싶다.

대선 포기 선언 후 그의 움직임이 이를 입증한다. 그는 범여권 대선 주자들을 잇따라 만나 '대통합'과 '범여권 후보 단일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DJ의 입장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당장 DJ도 '살신성인'이란 용어까지 동원해 가면서 김 의원의 결정을 치켜세웠다. 이제 김근태는 DJ 주장을 앞장서서 실현해 나가는 구심점이 된 것이다. 범여권 대선 주자군 중 가장 먼저 자신을 비웠기에 그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다. 손학규.정동영.천정배 등 누구도 김근태의 말을 외면할 수 없게 됐다. 대선 정국에서 DJ와 영향력 행사 경쟁을 하는 노 대통령에게 이런 김근태의 행보는 위협적이다.

김 의원의 움직임도 과거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는 논리적이고 자신에게 성실하려는 사람이기에, 자신의 감정조차 논리로 치환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이기에, 정치권에서는 '늘 한 박자 늦다'는 지적을 받았다. DJ가 집권했을 때에도, 노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에도, 그는 '비판적 지지' 입장을 견지했다. 그래서 그는 집권당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한 번도 주류가 될 수 없었다. 최고권력자의 입장에서는 화끈하게 지지해주지 않고 "1인 보스정치에 반대한다" "열린우리당은 노무현당이 돼선 안 된다"며 제동을 거는 김 의원이 달가울 리 없다. 2004년 4월 17대 총선 직후에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입각했을 때에도, 2006년 5월 지방선거 직후에 당의장을 맡았을 때에도 그는 노 대통령의 견제 속에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격적으로 불출마 선언을 하고 망설임 없이 '대통합' 운동에 몸을 던졌다. 만약 그가 대통합을 이룰 수 있다면 '생각 많고 행동 느린 햄릿' '비주류 김근태'의 이미지를 벗어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장애물이 있다. 바로 김근태 자신이다. "민주화 세력이라는 것을 더 이상 훈장처럼 달고 다니지 않겠다"고 했지만 '민주화 세력'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외교부 관리와 군 장성들은 미국의 앞잡이"라는 사고에 머물러 있다. 당의장 시절 서민경제 우선론과 추가 경제성장론을 내세우더니 결국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로 되돌아갔다. 범여권의 대선 후보들 중에는 이미 김 의원과 노선을 달리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자기 노선을 앞세우고 강요한다면 대통합은 성사되기 어렵다.

최근 김 의원이 탈당하자 노 대통령은 "배짱과 뚝심이 없다"고 쏘아 댔다. 물론 김 의원의 인생역정이 노 대통령의 비웃음거리가 될 정도로 녹록하지는 않다. 한나라당의 최병렬 전 대표조차 군사정권의 온갖 위협에도 굴하지 않은 김 의원을 인정한다고 할 정도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1980년대에 멈춰 있다면, 세상이 바뀐 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의 눈물은 헛된 감상의 찌꺼기로만 기억될 것이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