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들 자제 아직 멀었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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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가 보기에 지금 각 정당과 후보들은 중립정부와 선관위의 강력한 경고와 단속을 맞아 타성적인 불법선거운동과 자제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것 같다. 물론 우리도 정당들이 현승종총리의 경고서한과 각당 선거대책위원장과의 회동이 있은 후 많이 달라졌음을 인정한다. 민자당은 당 행사만 갖기로 했고 민주당은 선관위가 위법이라고 경고한 이른바 버스투어를 선거공고 전에는 하지 않기로 했다. 국민당을 제외하고는 각 정당이 정부와 선관위의 공명의지를 존중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자제의 모습을 보이는 한편으로 여전히 불법적인 사전선거운동의 타성을 버리지 못하는 현상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가령 12일의 상주행사에 간 김영삼민자당총재는 공개적으로 농민 등을 접촉했고,김대중민주당대표는 역전광장에서 연설했다.
우리 역시 후보의 유권자접촉을 엄격히 막고 있는 현행법 규정은 딱하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 법이 살아있고 법의 테두리에서 공명선거를 한번 해보자는 기대가 모처럼 크게 조성된 이 시점에서 후보들이 정말 공명선거를 해볼 생각이라면 제스처라도 단호히 법대로 당원행사만으로 그치는 모범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국민당의 경우 문제의 서산시찰을 계속할 뜻을 굽히지 않고 있고 곳곳에서 입당원서가 수만장씩 배달되는 일이 일어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현상들을 볼 때 지금부터 합법적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선거일 공고때(20일)까지의 며칠간이 이번 대선의 공명여부를 판가름하는 첫번째 관문이다. 이 며칠동안 정당과 후보들이 입으로 다짐하는대로 법을 지키고 자제한다면 공명선거를 실현할 수 있는 귀중한 한가닥을 우리는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외견상 자제하는 시늉만 보이고 실은 합법·불법을 가리지않고 선거운동을 계속한다면 공명선거 기대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 한번 간곡히 촉구코자 한다. 정당과 후보들은 모처럼 크게 고양된 공명선거 기대감을 외면말고 이 중요한 며칠간 자제의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특히 우리는 대선후보들이 모범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정부당국도 이 기간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공명의 고삐를 죄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듣기에 현 총리를 위시한 정부 고위직에는 단호한 공명의지가 있지만 밑으로 내려갈수록 의지가 약하다고 한다. 정권향방도 모르는데 누구와 원수맺을 필요가 있느냐는 무사안일·보신주의가 단속기관안에 감돌고 있고 강력히 단속하라는 상부지시가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 풍토라고 들린다. 중립정부의 관료들이 이런 자세를 갖고서는 결코 공명선거가 될 수 없다. 정당·후보의 자제와 함께 공명의지를 실천하는 관료집단의 기강도 확립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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