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총련 와해시켜 버리면 재일 조선인은 어떡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조총련은 과거엔 나의 적이었다. 그러나 조총련은 재일 조선인(북한 국적의 조총련 소속 재일 교포)의 권리를 보호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조총련을 와해시키고 내쫓는다면 재일 조선인들은 어떻게 하란 말이냐."

한때 조총련(재일조선인총연합)을 감시하고 위법 활동을 적발하는 책임자였던 일본의 전 공안조사청 장관이 이번엔 조총련 구명에 발벗고 나섰다가 검찰 수사를 받는 위기에 몰렸다.

빚더미에 눌려 자칫 길거리에 나앉게 된 조총련의 중앙본부 토지.건물을 매입하는 대신 건물 사용권을 인정해 주는 계약을 했던 오가타 시게타케(緖方重威.73.사진) 변호사가 그 주인공이다.

조총련은 18일로 1심 선고가 예정된 재판 결과에 따라 도쿄 지요타구의 중앙본부 건물에서 쫓겨날 위기에 빠져 있었다. 파산한 조긴(朝銀) 상호신용금고의 부실 채권을 인수한 일본 정부의 부실금융정리기관은 조총련이 조긴에서 대출받은 628억 엔의 상환을 요구하며 소송을 걸었다.

재판에서 패소하고 채무가 인정될 경우엔 부동산이 강제처분 당할 가능성이 크다. 가뜩이나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건이 밝혀진 뒤 재일 동포들의 조총련 이탈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결정적 타격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백기사'로 나선 사람이 오가타 전 장관이다. 그는 지난달 31일 조총련과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35억 엔에 건물을 매입하고 명의를 이전받는 대신 5년간 건물을 계속 사용하도록 하는 우호적인 조건이었다.

더구나 5년 동안 제3자에게 명의를 이전하지 않고 나중에 조총련이 원할 경우엔 토지와 건물을 되판다는 조건도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이 대표직을 맡고 있는 투자자문회사를 통해 매입자금을 조달키로 하고 명의 이전 등기까지 끝냈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12일 마이니치신문의 보도로 이 같은 사실이 공개되면서였다. 납치 문제 등으로 일본에서 여론이 악화한 조총련을 도와주는 행위를 놓고 곱지 않은 눈길이 쏟아졌다. 납치 문제와 조총련의 각종 위법 행위에 대한 수사를 강화하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정책에도 반하는 행위였다.

검찰은 13일 전격적으로 오가타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매각 대금도 건네지지 않은 상태에서 명의 이전 등기를 마친 데 대해 '위장 등기' 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검사 출신으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 중인 오가타는 이에 대해 "나의 행위는 대의(大義)에 따른 것이며 위법성은 전혀 없다"며 "압수수색은 조총련과의 계약을 무산시키려는 정치적 의도에 따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훗날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