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의 유럽통합/배명복 파리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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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유럽통합의 꿈은 한낱 신기루로 끝날 것인가.
요즘 유럽이 돌아가는 판세를 지켜보면서 품게 되는 의문이다.
국가이기주의의 첨예한 대립으로 유럽은 단합과 통일로 나아가는 모습보다는 분열하고 반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통일비용 마련을 위해 독일은 다른나라 사정에는 아랑곳하지 않은채 고금리를 고집해 유럽 전체의 불황을 조장하고 있고,프랑스는 자국농민 보호를 앞세워 유럽을 미국과 무역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가고 있다.
국내 반유럽세력에 발목을 잡힌 영국의 존 메이저정권은 정치적 생존과 유럽동맹조약(마스트리히트조약)의 비준을 맞바꿔 버림으로써 적어도 내년 5월 이전에는 영국의 조약 비준을 기대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스페인·포르투갈 등 역내 후진국들은 또 그들대로 자국에 대한 EC(유럽공동체) 차원의 지원 증대가 보장되지 않는 한 통합에 브레이크를 걸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마치 한지붕 열두가족의 동상이몽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유럽은 입버릇처럼 항상 통합을 외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미국에,경제적으로는 일본에 맞서 유럽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유럽통합은 반드시 필요하며,이는 역사와 시대의 요구라고 말하고 있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최근 상황을 볼때 빨라도 내년 가을 이전에는 마스트리히트조약비준문제의 완결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럴 경우 프랑스·독일·베네룩스 3국 등 적극적인 통합추진세력만으로 우선적인 통합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독·불 양축의 유대가 언제까지 계속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점점 확산되고 있는 독일내의 극우논리에 대한 심각한 우려와 경계의 목소리가 프랑스에서 크게 높아가고 있고,미­EC간의 이번 무역분쟁에서 보듯 독일로서도 프랑스의 억지에 가까운 논리를 옹호해 줄 수만도 없는 형편이다.
독일과 프랑스가 잡았던 손을 놓게 될 경우 유럽통합의 꿈이 깨지는 것은 물론이고 유럽은 다시 대립과 갈등의 시대로 회귀할 수 밖에 없다.
유럽에 팽배해 있는 국가이기주의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통합유럽의 거창한 집을 짓는다는 유럽인들의 원대한 꿈은 이루어질 수 없는 헛된 꿈으로 끝나고 말 것이며,설혹 그 꿈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래위에 지은 집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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