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운동 사령부를 포격하라(성병욱 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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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즘 선거판을 보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대통령선거법에 선거운동은 선거날짜 공고후 후보등록을 하고나서야 하게되어 있다. 길어봐야 선거일전 28일간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전국이 유세판,선심관광판,먹자판으로 돌아간다.
건전한 상식으로는 이모두가 선거법 34조와 1백62조1항에서 금하고 있는 사전선거운동에 해당된다. 3년이하의 징역이나 금고,또는 3백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할 범죄행위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의 그물을 빠져나가는 큰 구멍이 있다. 바로 「정당활동」이라는 구실(Loophole)이다.
○정당활동 내걸고 탈법
민자당은 벌써 얼마전부터 당원 필승대회라는 이름으로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지난 주말 부산체육관에서 열린 집회에는 2만여명의 청중이 참석했다는 것이다. 선거운동에 나설 당원단합대회라면 수백명,많아야 천명대의 모임이어야지 청중이 만명대가 넘어서야 그 자체가 명백한 선거운동이요,대규모 선거유세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대회에 참석한 김영삼후보는 지역의 공장·시장·각종 시설 등을 방문해 유권자들과 접촉을 가졌다. 거기에서 무슨 말을 하든 일반국민의 눈에는 모두 선거운동으로 보인다.
김대중후보가 전국 버스순회를 하고 있는 민주당은 지난 주말 느닷없이 임시전당대회라는 이름으로 대전공설운동장에서 3만여명이 참석한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었다. 후보지명대회도 벌써 끝난 마당에 왜 별안간 임시전당대회라는 것을 또 열었는지는 묻지 않아도 뻔하다. 대규모 선거유세를 갖기 위해 「정당행사」라는 탈법적 구실을 갖다붙인 것이다. 언제 야당전당대회가 노천운동장에서 당원 수만명이 참여해 열린적이 있는가.
국민당의 행태는 더욱 가관이다. 당원연수란 명목으로 하루에 수천명씩을 관광버스에 태워 현대의 서산농장과 울산 현대공단을 관광시키고 있다. 국민당측은 당원들에게 당수의 업적을 홍보하는게 어떻게 선거운동이냐고 하지만 핵심 선거운동요원만도 아니고 하루 수천명씩 실려오는 시찰인파를 어찌 선거선심과 무관하다고 볼 수 있겠는가. 경기도 등 몇몇지역에서는 손목시계까지 주었다고 하지 않는가.
이러한 각당의 탈법 내지 불법운동은 그나마 「정당활동」의 탈을 쓰고 있는데 그러한 눈가림조차 없이 아예 터놓고 벌이는 불법선거운동도 많다. 신정당의 박찬종후보는 벌써 오래전부터 노상토론이라는 이름으로 가두유세를 해왔다. 그것이 불법 사전선거운동이라는 것은 법률가인 그 스스로도 정당방위·긴급피난의 법리를 내세울뿐 부인하지 않는다.
○드러내놓고 위법 자행
또 선관위로부터 경고를 받거나 사직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3당후보의 대표적 사조직만도 김영삼후보의 민주산악회,김대중후보의 연청,정주영후보의 현대그룹이 있다. 회원수가 수십만명인 양김씨 사조직들은 당의 사조직과 각지에서 미칠을 일으킬 정도로 규모와 위세가 대단하다. 왜 이렇게 돈과 공을 들여 사조직을 키우겠는가. 선거운동에 활용하고 지지세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선거운동을 위한 조직이니 그 활동이 모두 사전선거운동이거나 위법운동이다. 이중 특히 현대는 계열사 직원들을 활용해 국민당원 확대에 나섰고 계열사별로 지역책임제까지 실시중이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정 후보가 지난달 현대사장단회의에 참석해 대선득표결과를 인사에 반영하겠다고 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선거운동에서 국민당과 현대중 어느 것이 주고,어느 것이 종인지 모를 지경이다.
○후보에게 책임 물어야
선거법 같은 것은 오불관언이다시피한 각 정당과 후보진영의 이러한 불법·탈법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후보라고 해서 전국 각처에서 벌어지는 불법의 구체적 사례를 일일이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을 도외시하는 선거운동의 기본틀에 대한 최종책임을 질 사람이 누구인가. 당 대표를 겸하고 있는 각당의 대통령후보들은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들이라면 다시 한번 곰곰 생각해야 한다. 스스로 손질해 만든 선거법을 이토록 무시하면서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표를 달라고 할 수 있는가를.
이렇게 만연된 불법풍토를 개선하자면 충격요법밖에 없다. 총체적인 책임자에 대해 직접 경고·고발·입건 등 사법조치를 불사하는 것이다. 엄정한 선거관리란 역사적 임무를 부여받은 중립선거관리내각이 이것 저것 재고 눈치를 봐선 안된다. 법만이 준거기준이다. 그런 의미에서 후보들의 탈법·위법행위에 대한 현승종국무총리의 경고서한은 정부의 공명의지에 대한 기대를 갖게한다.
선관위도 각 정당과 후보의 위법사항에 대해 경고하고 시정되지 않으면 사직당국에 가차없이 고발해야 한다. 특히 중앙선관위는 단편적인 위법이 아닌 조직적 위법행위에 대해선 최종책임자에 대한 경고·고발 등의 조치를 유보없이 취하는게 중요하다. 그래야 정부·검찰의 단호한 처리방침과 어울려 충격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체질화된 불법불감증을 치유하자면 모택동의 말처럼 그 불법의 「사령부를 포격」하는 방법외엔 다른 도리가 없다.<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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