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구 배지 반납하고나 입당하지…”/최훈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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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9일 민주당에 재입당한 조윤형의원은 아직 「입당의 변」을 털어놓지 않고 있다. 당내 상당수 인사들조차 『조 의원이 무슨 할말이 또 있겠느냐』고 비아냥대는 실정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번 대선의 으뜸구호이기도 한 「대화합의 정치」라는 명분과 『조 의원이 이미 과거를 사과했다』는 설명을 곁들여 그의 입당을 긍정적으로 포장하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6선에다가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조 의원이나 수권정당으로 발돋움 하겠다는 민주당은 이번 그의 재입당이 과연 「화합」과 반성의 차원인지,아니면 세몰이의 차원인지,그리고 오갈데 없는 「떠돌이」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인지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 그의 과거 정치행적은 논외로 치더라도 국민당의 공천으로 전국구 의원에 당선되자마자 당을 이탈,다른 당에 입당했기 때문이다.
올초 민주당 내의 정치발전연구회(정발연)를 조직,「당내 민주주의」확립을 명분으로 김대중대표의 13대 전국구 헌금 치부를 공개한 조 의원은 이미 한차례 제명된후 「사과→구제」의 길을 밟은 전력이 있다. 그러나 조 의원은 「당선가능성 불확실」이라는 이유로 민주당에서 공천에 탈락하자 탈당,국민당에 입당했었다.
조 의원의 당시 탈당변은 『김대중대표의 독선적 당운영 때문』이었다. 국민당 최고위원으로 총선지원 유세에 나선 조 의원은 『양김청산이 시급하다』『선친(유석 조병옥)의 뜻을 받들어 좋은 새정치를 하기 위해 국민당에 왔다』고 열을 올렸었다. 그 덕에 그는 국민당 전국구의원이 됐다. 그러나 조 의원은 뚜렷한 이유와 명분도 없이 총선직후 『정주영대표의 독선적 당운영에 불만』이라는 똑같은 이유로 탈당해버렸다.
국민당측은 조 의원의 탈당이 민자당측의 공작정치 소산이라고 몰아붙이며 전국구 의원의 당적이탈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까지 냈다. 여론도 조 의원을 비판하는 쪽이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10여일전 김대중대표는 시내 서교호텔에서 조 의원과 비밀회동,재입당의 뜻을 확인했다. 이어 당무회의에서 제명 또는 탈당시 1년이내에 복당·재입당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는 당규를 고쳐 그에게 재입당의 길을 터주었다.
1년도 안되는 사이 정강정책이나 노선이 판이한 정당을 옮겨다니면서 그 지도자들을 온갖 험구로 매도했던 사람이나 그를 받아들이는 정당 모두 대의명분이 없기는 마찬가지인 것같다.
민주당의 젊은 당료들이 오죽하면 『차라리 국민당에 전국구 금배지를 반납하고 오면 떳떳이 받아들이고 싶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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