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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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흥미있는 전례를 남긴 사람들로는 22,24대 대통령을 지낸 그로버 클리블런드와 26대 대통령을 지낸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꼽힌다. 첫 4년 임기를 보낸후 이들이 남긴 행적은 크게 대조적이다.
22대 임기를 성공적으로 끝낸 클리블런드는 소속당인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열렬한 박수만으로 재지명을 획득하고 1888년 23대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소속의 벤저민 해리슨후보와 맞붙었으나 일반 투표에서 10만표가량 앞서고도 선거인단표에서 뒤져 낙선하고 말았다. 4년후인 1892년 다시 민주당후보로 해리슨대통령과 대결한 클리블런드는 근소한 차이로 현직 대통령을 물리치고 당선의 영광을 차지했다.
25대 윌리엄 매킨리대통령의 피살로 부통령에서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루스벨트는 26대 선거에서 손쉽게 당선해 많은 업적을 남긴 다음 1908년 선거에서는 같은 공화당 소속의 윌리엄 태프트를 당선시키는데 크게 힘쓰고 은퇴했다. 그때 그의 나이는 50세였다. 태프트의 몇가지 실정으로 사이가 벌어진 루스벨트는 1912년 선거에서 새로 발족한 진보당의 지명을 얻어 공화당의 태프트대통령,민주당의 우드로 윌슨후보와 3파전을 벌였으나 윌슨에게 패배했다.
첫 4년 임기를 끝낸 미국의 대통령들이 지향하는 진로는 몇갈래로 나뉜다. 한차례 연임이 가능한 헌법에 따라 재도전하는 경우,정치 이외의 활동을 벌이는 경우,평범한 소시민으로 조용하게 여생을 보내는 경우 등이다. 미국 정계에서는 재도전에 실패하는 경우를 최악의 경우도 꼽고 있다. 재도전하는 사람일수록 권력에의 향수에 연연하는 사람들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재도전을 꿈꾸지 않았던 전직 대통령들은 편안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지만 재도전에 실패한 전직 대통령들은 온갖 후유증에 시달린다고 한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듯 행동하지만 그들의 내면생활은 초조와 갈등에서 빚어진 우울증으로 신경이 항상 곤두서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대통령직에의 재도전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헌법은 전직대통령들로 하여금 재선 실패로 인한 우울증을 겪지 않아도 좋게 하고 있으니 미국의 전직 대통령보다는 「행복」하다고나 할까.<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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