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앞둔 부시 마지막 강공/대EC 「무역전」 선전포고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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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선거패배로 정치적 부담 없어져/마무리맡을 클린턴·언론도 지지/EC버틸땐 보호주의 본격화 확실
조지 부시 미 행정부가 선거에서 패배한 다음날인 5일 각료회의에서 유럽공동체(EC)산 백포도주에 대해 2백%보복관세 부과를 결정한 배경을 놓고 해석이 구구하며 새로 들어설 빌 클린턴 정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관심이 되고 있다.
사실 부시행정부는 금년 상반기에 우루과이라운드(UR)의 타결을 목표로 협상에 임해왔다.
그러나 농산물의 보조금지급문제,다시 말해 농산물의 수입개방문제가 걸림돌이 되어 협상이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번 협상에서 미국이나 EC가 모두 국내적으로 약한 입장에 있었다.
선거를 의식한 부시행정부는 자유무역을 내세우면서 무역전쟁을 선포할 경우 자신의 정책에 대한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유럽,그중에서도 EC최대농업국가인 프랑스 역시 농민들의 정치적 발언권 때문에 미국의 개방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입장이었다.
부시로서는 우루과이라운드의 타결을 선거용 호재로 삼았으나 EC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선거운동 카드가 사장되고 말았다.
부시행정부는 선거에 패배함으로써 이제는 이러한 정치적 부담이 없어졌다.
그러나 그 결정의 배경을 떠나 부시행정부의 이러한 결정은 미국의 언론과 민주당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
물론 공화당을 지지하는 보수농민층에 도움이 되는 조치로 보고 있으나 이번 결정은 행정부의 정상적인 활동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는 해석이 더 많다.
이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보복에 보복으로 이어질 경우 당연히 뒷마무리는 클린턴정부가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클린턴 자신은 이 문제에 대해 『지금 미국의 대통령은 부시 한사람 뿐』이라며 부시행정부의 결정을 지지하고 있고 그의 대변인 역시 『만일 외국이 시장을 개방하지 않으려 한다면 우리도 강경자세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이번 조치에 찬성하고 있다.
부시행정부는 퇴임전에 자신들이 목표로 세웠던 UR협상이 성공을 하는 실패를 하든 결말을 내야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이번에 유럽이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버틸 경우 UR는 고사하고 자유무역주의 원칙조차 흔들릴 가능성이 많다.
미국은 이번 일이 국제 도덕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명분이 있는 조치로 믿고 있다.
미국은 이 문제를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두번이나 제소해 승소판결을 얻어냈다.
문제는 강제집행권이 없는 GATT가 판결만 내렸지 집행할 능력이 없으므로 미국의 요구를 EC가 묵살할 수 있었다.
따라서 집권 60여일밖에 남겨두지 않은 부시행정부는 이제 가부간 결판을 내야 할 시기가 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미국의 결정은 EC가 자유무역을 신봉한다면 이번을 계기로 UR협상은 타결을 보는 쪽으로 가고,그렇지 않다면 미국은 보호주의로 돌아설 수 밖에 없다는 일종의 선언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일이 국제무역에서 주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동구의 붕괴이후 UR협상 타결로 서방국가들 간에 새로운 질서를 확립할 수 있을지 아니면 상호 보복관세 부과로 인한 무역전쟁이 촉발돼 질서의 붕괴로 들어갈 것인지 판가름 난다는 것이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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