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시설 폐쇄 수순 밟을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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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묶여 있던 북한 자금이 14일 러시아 은행의 북한 계좌로 이체되기 시작됨에 따라 6자회담 '2.13 합의' 이행의 걸림돌이었던 BDA 북한 자금 송금 문제가 종착점에 도착했다.

북한은 BDA 자금이 러시아의 북한 계좌로 송금되는 즉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초청하는 작업부터 착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IAEA 사찰단이 방북하게 되면 북한은 동결 대상과 범위 등을 논의하고 앞으로 한 달 정도 후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BDA 자금 송금에 따른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는 2.13 합의 이행에 이어 6자회담 개최, 그리고 힐 차관보의 방북과 6자 외무장관회담 성사 쪽으로 이어진다.

물론 이번 송금이 BDA에 묶인 자금에 국한된 일회적인 것일 경우 북한이 다시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대외 금융거래 전반에 걸쳐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 달라는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BDA 자금 인출이 자칫 출구가 아닌 새로운 문제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간 BDA 북한 돈 문제는 난제 중의 난제였다. 다섯 가지 해법이 동원됐을 정도로 미궁이었다.

6차 6자회담이 열리던 3월 19일. 대니얼 글레이저 미 재무부 부차관보가 BDA의 북한 돈을 중국은행(BOC)의 북한 계좌로 옮기는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발표 당일 바로 문제가 불거졌다. BOC 측이 불법으로 얼룩진 북한 자금을 이체받을 경우 은행 신인도 하락 등 피해가 우려된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미국은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4월 8~11일 빌 리처드슨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를 수행해 북한을 방문했던 빅터 차 미 백악관 NSC 보좌관은 '제3국 은행을 통해 송금할 수 있게 해달라'는 북한 측의 요청을 수용한 해법을 북측에 제시했다.

당시 차 보좌관이 "BDA의 돈을 합.불법 가리지 않고 다 풀어주겠다. BDA 인근 인도네시아계 은행으로 송금해 찾아가면 된다"고 하자 김계관 부상은 "정말인가"라며 놀라워했다. 그렇지만 다음 날 북한은 입장을 바꿔 "미국 은행을 이용해 송금해 달라"고 나왔다. 차 보좌관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북한의 요구사항이 점점 커지면서 사태는 완전히 미궁에 빠졌다.

그러던 중 러시아가 나서면서 BDA 문제 해결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이제 관심의 초점은 북한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2.13 합의에 따른 북한의 초기조치(영변 원자로 폐쇄, 국제원자력기구 사찰관 초청)를 이행하느냐다.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성명 등을 통해 누차 BDA 문제만 해결되면 즉각 영변 원자로 가동을 중단하겠다고 공언해 왔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17일 몽골 방문 직후 베이징과 서울.도쿄를 잇따라 찾는 것도 대북 압박의 맥락으로 읽힌다.

정부는 북한의 초기조치 미이행으로 유예된 중유 5만t과 쌀 차관 등 대북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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