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대 휴대전화 해커가 노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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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광고에 나오는 KTF의 '쇼(show)'와 SK텔레콤의 '3G+'는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다. 우리나라 통신산업의 새로운 견인차다. 그런데 이 3세대 서비스가 해커들의 공격에 자유롭지 않다.

2007년 12월 24일 밤 서울시청 앞 광장. 크리스마스 전야제에 참여한 사람들의 휴대전화기에 갑자기 'ㅋㅋㅋ'라는 문자 메시지가 떴다. 그러더니 자신도 모르게 그 메시지가 자동으로 자신의 주소록에 담긴 사람들에게 연쇄적으로 보내졌다. 문자 메시지가 폭증하자 곧이어 이동통신 통신망이 마비됐다. PC를 주로 공격하던 해커들이 '모바일 세상'을 급습한 결과다. 이들 해커는 심지어 문자 바이러스에 걸려들어 답장을 보낸 사람들의 단말기에서 개인 금융정보를 뽑아내 온라인으로 돈을 빼갔다.

가상으로 꾸며본 이 같은 '모바일 혼란'은 먼 이야기가 아니다. 동영상 통화를 하면서 PC처럼 인터넷도 쓸 수 있는 3세대 이동통신이 최근 국내에서도 본격 서비스되면서 휴대전화도 PC 환경에서 일어났던 해킹.바이러스.악성코드의 공격 대상이 됐다.

이에 따라 정보통신부는 최근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과 함께 3세대 이동통신 보안대책을 세울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정통부 서병조 정보보호기획단장은 "모바일 바이러스의 해외 피해 사례를 분석해 예방 및 치료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TF엔 SK텔레콤.KTF 등 이동통신회사는 물론 삼성전자.LG전자.안철수연구소 등이 참여했다.

◆왜 3세대 폰이 감염되나=3세대 이동통신은 PC처럼 인터넷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서비스다. 3세대 단말기엔 인터넷 접속을 관리하는 소프트웨어(운영체제.OS)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PC에서 나타났던 바이러스 등이 휴대전화에도 감염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것이다.

이성근 안철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모바일 바이러스가 기하급수적으로 자기복제를 하면 통신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려 통신 서비스 자체가 중단되는 일도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KISA의 원유재 응용기술팀장은 "해커들이 침투해 휴대전화의 금융거래 데이터 등 개인정보를 훔쳐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이동통신 가입자 대부분이 사용 중인 2세대 휴대전화기엔 3세대에 있는 OS가 없다. 또 2세대 휴대전화로는 인터넷을 잘 쓰지 않아 인터넷 데이터는 통신회사의 서버(컴퓨터)가 주로 처리하기 때문에 모바일 바이러스 걱정이 없다.

◆해외에선 감염 사례 속출=공식적으로 보고된 세계 첫 모바일 바이러스는 2004년 미국에서 출현한 '카비르'다. 이 바이러스는 '심비안OS'를 탑재한 개인휴대단말기(스마트폰)를 감염시켰고, 30개 변종을 만들어내면서 미국에서 활개를 쳤다.

지난해에는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심비안OS를 깐 3세대 단말기를 출시하면서 휴대전화기에도 모바일 바이러스가 등장했다. 이처럼 문제가 심각해지자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모바일 보안 문제를 특집기사로 다루기도 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미국 보안업체 맥아피가 지난해 전 세계 200여 개 주요 이동통신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 업체의 83%가 모바일 바이러스나 악성 메일 등으로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감염 피해는 시간문제=우리나라에선 아직 모바일 바이러스 피해 사례가 보고된 적이 없다. 보안업계는 아직 국내 3세대 가입자 규모가 해커들에게 관심을 끌 만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3월 KTF에 이어 지난달 SK텔레콤이 전국 서비스에 들어간 3세대 서비스의 가입자는 현재 100만 여 명이다. 전체 휴대전화 가입자(4100여만 명)의 2.4% 수준이다. 해커들이 활동하려면 최소한 가입자가 200만 명은 넘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업계는 연말께 3세대 가입자가 5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3세대 휴대전화는 동영상 통화가 가능하고 국제 자동로밍 등 각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탑재한 만큼 바이러스에 노출될 여지가 많다.

KTF 관계자는 "당장 문제는 없지만 혹시 있을지 모르는 모바일 바이러스 피해에 대비해 3세대 단말기에 백신(방어장치)을 내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원호.김원배.장정훈 기자

◆운영체제(OS.Operating System)=PC나 휴대전화기에서 내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작동하는 기본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이 있어야 PC나 휴대전화기를 켜며, 다양한 서비스나 소프트웨어를 이용하고 데이터를 저장.관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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