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대형 마트 규제 '득보다 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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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최근 대형 마트 규제를 위한 법안들이 잇따라 국회에서 발의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주요 내용은 영업 시간.영업 일수.취급품목 등 영업 규제와 허가제 전환을 통한 설립 제한 등으로 규제 강도가 매우 크다. 법안 발의의 배경은 대형 마트 확산으로 중소 유통업체가 쇠퇴와 위기에 직면하고 있어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규제가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영업시간에 대한 규제가 시행되면 단기적으로는 생활필수품을 취급하는 동네 중소 유통업체의 매출이 어느 정도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효과는 감소할 것이다. 반면 소비자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소비 위축을 낳을 것이다. 대형 마트 출점 규제가 이루어진다면 이는 해당 지역에 이미 개점한 기존 대형 마트를 보호해 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또 유통 기업들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 크기의 새로운 유통 업태를 등장시킬 것이 분명하다. 결국 그렇게 되면 중소 유통업체 보호를 위해 도입한 대형 마트 규제법이 그 효과를 얻기 어려워지며 도리어 득보다는 실만 커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1993년 이마트 창동점 개점과 함께 국내에 등장한 대형 마트는 96년 유통시장 개방과 함께 점포 수가 급속히 증가했다. 현재 약 350개의 점포가 영업 중이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소비자가 가장 선호하는 쇼핑 장소는 대형 마트(61%)이고 다음으로 재래시장(17.5%), 수퍼마켓(16.9%) 순으로 나타났다. 어느덧 대형 마트는 소비자가 가장 선호하는 소매업태로 자리 잡은 것이다. 대형 마트의 지역 출점에 대해서도 지역 소비자의 57.7%가 찬성하고 16.9%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대형 마트에 대한 규제 논의는 시장의 각 경제주체, 특히 소비자의 입장을 고려해 검토해야 할 것이다.

중소 유통업체의 경쟁력 저하는 복합적인 원인 때문이다. 지난해 중기청 시장경영지원센터 조사에 따르면 중소 상인의 시장변화에 따른 대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부의 정책 지원이나 다른 어떤 것보다 중소 유통업체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상인 스스로의 변화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또 대형 마트와 경쟁하려면 취급 품목의 구색이나 서비스 등에서 차별화가 중요하다. 대형 마트의 확산과 새로운 혁신적 유통업태의 등장이 유통시장의 대세인 오늘날 중소 유통업체의 침체 원인을 대형 마트 때문으로만 여기고 이 문제에만 골몰하는 것은 문제 해결의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남을 탓하기보다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풀려고 할 때 정부 지원정책의 뒷받침과 함께 재래시장 상인을 포함한 중소 유통업체의 경쟁력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대형 마트도 전국적으로 규모의 경제에 따른 경쟁력을 앞세운 성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대형 마트 이용 소비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형 마트 이용 횟수를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마트 간 지나친 출점 경쟁은 비용 증대와 향후 경쟁력 약화로 끝날 수 있다. 대형 마트는 과당경쟁을 지양하고 상생의 자발적 노력이 기업 이미지 제고 등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다는 것을 이해해 지역사회 및 거래처와 더욱 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백화점 셔틀버스 운행 규제가 성과가 없었듯 어떤 특정 목적을 가진 규제가 실제로는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따라서 규제에 앞서 목적이 달성될 수 있을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규제의 당위성에 대해서도 충분한 여론 수렴이 있어야 할 것이다. 분명히 시장환경의 급변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 유통업에 대해서는 정부의 효과적인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규제보다는 상생협력을 유도하고 대형 마트와 중소 유통업체가 경쟁관계가 아닌 보완관계로 발전하도록 정책적 조정 및 지원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정희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