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코레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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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83년 런던의 크리스티경매장에서는 루벤스의 그림 한폭이 소묘화로는 경매사상 최고가로 팔려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그 그림값 때문이 아니라 『한복을 입은 남자』라는 그림의 제목과 내용때문에 더 화제가 되었다.
루벤스(1577∼1640)가 1617년(또는 22년)에 그렸다는 이 인물화는 세로 38.2㎝,가로 24.6㎝의 화폭에 천릭과 방건을 쓴 건장한 청년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철릭은 조선조초기 남자들이 외출복으로 흔히 입었던 옷이며 말총으로 만든 방건 역시 흔히 쓰던 모자였다.
그렇다면 루벤스는 이 그림의 모델을 어디서 구했을까. 그가 활동했던 시대는 우리나라 선조에서 인조때까지. 그래서 일부 미술사학자들은 당시 루벤스와 만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딱 한사람을 꼽고 있다. 안토니오 코레아.
최근 원로 음악평론가 박용구씨는 이 안토니오 코레아를 주인공으로 한 실록 뮤지컬 『불멸의 피리』를 완성했다. 여러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해 쓰여진 이 작품을 보면 16세의 주인공은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7년 전남 운봉에서 부모를 잃고 왜병에 끌려 일본으로 건너간다. 나가사키의 노예시장에서 이탈리아신부 프란체스코 카를레티를 만나 다른 소년 4명과 함께 중국 마카오,인도를 전전한 끝에 1606년 로마에 도착한다. 그는 이곳에서 자유의 몸이 되고 코레아라는 성을 갖게 된다. 카를레티신부의 도움으로 사제교육을 받은 그는 수사가 되지만 어느날 교황이 일본사절의 어깨에 손을 얹어 축복하는 것을 보고는 충격을 받고 로마를 떠난다.
코레아가 알비라는 조그만 마을에 발길이 닿은 것은 1607년. 그는 마을 축제에서 아눈치타라는 예쁜 처녀를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되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의 나이 25세때다.
로마에서 남쪽으로 7백㎞쯤 떨어진 이 알비마을에는 현재 코레아성을 가진 22가구가 집성촌을 이루며 단란하게 살고 있다. 물론 그들이 임진왜란때 끌려간 소년의 후예들이란 확실한 기록은 없다. 그래서 이 코레아성의 뿌리를 찾기위해 안토니오 코레아의 후손이 한국에 왔다. 필리포 코레아씨. 꼭 4백년만에 「선조의 땅」을 찾은 그의 소망이 결실을 보기 바란다.<손기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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