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눈물고개|김지숙(연극배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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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어느 날 자정 가까이 만이의 전화가 걸려왔다.
대뜸 하는 말이『학교 다닐 때 공부 잘 했어요?』다.
만이는 대학입시를 코앞에 둔 고3생인데 그 지옥 같은 과정을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넘길 수 있었는지 궁금했었나 보다.
내 집에는 하루에 수십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그 중엔 청소년 팬들의 전화도 제법 많다. 대부분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학생들이어서 나 자신 본의 아니게 상담요원 노릇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때마다「사이코 드라마」를 하러 5년간 정신병원에 다니던 일을 떠올리곤 한다. 병원에서 가장 가슴아프게 만난 사람들은 입시 강박관념에 시달리다 견디지 못하고 어둡고 우울한 세계에 자신을 가둬버린 학생들이다. 대부분 그들은 티없이 맑은 젊음과 풍요로운 정서를 가지고 있었으나 명문대에 들어가야만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적 통제력이 파괴된 경우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 학생들을 보면 아름답기 그지없다고 느끼다가도 그들이 입시지옥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발견할 때면 어른의 한 사람으로 자괴감을 감출 수 없다.
하지만 영화 촬영장에서 지금도 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있을 현아를 생각하면 절로 어깨가 펴진다.
그 애는 고3때부터 내가 출연하는 연극에 스태프로 일해오고 있는데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자신의 몫을 다 해내고 있다.
그가『연극을 배우고 싶다』며 처음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대학에는 안 갈거니?』하는 질문을 거의 습관적으로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에 가서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있겠지만 살아가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요.』
순수하고 건강한 의도를 가진 젊은 학생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때 나는 더 없이 큰 힘을 얻게된다.
곧 대학입시가 다가온다. 풋풋한 젊음을 발산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긴 채 입시의 망령에 갇혀 지옥 같은 생활을 해야 하는 청소년 수험생들을 생각하면 왠지 가슴이 답답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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