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하락의 의미(신 금융시대의 서곡: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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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중구조」없애야 경제 체질개선/금융기관·기업 모두 변신 불가피/정치권입김 등 고질병 해소 기대
금리체계가 변혁의 시대를 맞고 있다.
자유화된 일부 여·수신금리가 떨어지면서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절박한 변신을 요구받고 있고,금리자유화냐 공금리인하냐 하는 정책선택문제까지 성급하게 거론되고 있다.
최근 금리하락의 의미는 무엇이며 왜 금리가 내려가는지,앞으로의 정책대응은 어떠해야 하는지 등 금리체계변화에서 비롯되는 경제전반의 문제를 4회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주>
금리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 금리를 이야기하던 틀을 갖고 요즘의 금리를 다루려는 것은,이제 80년대 중반의 외채망국론이란 틀을 갖고 요즘의 순외채를 파악하려는 것과 거의 진배없게 되었다. 비록 일부분에서나마 사상 처음으로 실세금리가 규제금리에 접근해 이제 잘하면 금리의 「천하통일」이 이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을 맞고있기 때문이다.
올해초까지만 해도 금리라고 하면 정부가 억지로 낮게 눌러놓고 있는 명목금리와 이에는 아랑곳 없이 높은 곳에서 따로 노는 실세금리라는 두개의 금리를 분명히 갈라놓고 생각해야만 했다.
그러나 최근 여신 쪽에서부터 실세금리가 주저앉으면서 명목금리와의 차이가 거의 사라지려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기업의 금융비용부담이 줄어든다」는 단순한 「이잣돈」 문제가 아니다. 이는 이제 우리의 금융산업 전반이 달라져야 한다는 신호이고,나아가 우리 경제 전체의 체질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신금융시대의 서곡」이 조율에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뜻이 된다. 금리의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세금리와 명목금리라는 두개의 금리가 있는 것과,이 두개의 금리가 겹쳐져 하나의 금리만이 있는 것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두개의 금리가 있는 경제 상황에서는 「싼 금리」에 매력을 느끼는 자금의 가수요가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금리가 비싸지면 투자를 포기하는 기업인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 교과서에 적혀있는 이야기인데,잘만 하면 싼금리의 자금을 끌어낼 수 있는 상황에서 그같은 교과서나 뒤적이고 있을 기업인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힘센 사람이 더 많이 싼 자금을 끌어다 쓰고 힘없는 사람은 소외당하는 불균등한 금융 배분이 일어났고,그같은 일들이 오래 계속되고 나니 바로 관치금융이니,정치권의 입김이니,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이니 하는 우리 경제의 고질들이 생겨나고 말았다. 또 은행은 은행대로 정해진 금리와 정해진 이윤 폭이 있으니 무조건 외형만 늘려 이익을 남기고,상호지보나 부동산 담보만 잡아놓은채 안심하고 대출 부탁에 돈 인심을 쓰는 체질이 굳어져버렸다. 그 결과가 바로 금융산업의 낙후고 수신 위주의 외형 경쟁이며,재벌 계열사들의 거미줄 같은 상호지보고 탐욕스러운 부동산 선호다.
최근의 실세금리 하락이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은 이처럼 만병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금리의 2중구조가 잘만 하면 아예 없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보일락 말락 하기 때문인 것이다.<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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