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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동 작『나는 사랑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우리의 본격문학이 위기의 국면을 맞고 있다. 본격문학과 독자 사이에 그 어느 때보다 심화된 불화의 관계가 불러일으킨 위기다. 본격문학이 현저하게 외면 당하고 있는 문학 시장의 현실이 무엇보다 뚜렷한 징후적 현상의 하나다.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독자들을 열광시켜왔던 전범적인 문학들은 이제 대학의 문학 교실에서조차 고역을 강제하는 행위-한갓 과젯거리가 되고 말았다.
도대체 사태가 이처럼 악화된 원인이 무엇일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 같은 현실이 초래되는데 상승적으로 작용했을 사회·문화적 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문학이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보태어 말하자면 본격문학과 독자 사이에 불화의 관계를 촉진시킨 책임의 일부분은 바로 작가들 자신의 몫인지도 모른다. 가령 독자들은 부단히 변화하는데 작가들은 그간 정체돼 있지나 않았는지, 독자들의 진화한 도덕적 규범과 심미 규범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일에 작가들이 소홀했던 점은 없었는지 겸허하게 되돌아 봄직하다.
이달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절실하게 떠올려본 생각들이다. 치명적으로 손상된 문학과 독자의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작가들은 새로운 담론의 방식을 개발해야하고, 그들이 구사해온 서술의 전략이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도 한번쯤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박기동씨의『나는 사당을 위한 낭송시집을 사러 간다』(『문학사상』10월호)를 화제로 부상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이 같은 비평적 관심을 제기해보기 위해서다. 근년의 우리 비평의 지배적 논리에 의존한다면 이 소설이 변호 될 여지는 거의 없다.
『나는 사랑을 위한 낭송시집을 사러 간다』에는 주목할만한 사회적 쟁점이나 뜻 있는 교화적 이념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가정을 가진 장년의 작중인물이 한강 고수부지에서 젊은 애인을 기다리는 동안주위에서 목도되는 세대를 관찰하고, 여인이 나타나자 자리를 털고 일어나 여관에 함께 투숙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하고있는 이 소설에서 작가의 도덕적 관점은 은폐되고 있거나 거의 전적으로 유보되고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박씨의 소설은 부박하고 외잡스런 세태에 무반성적으로 편승한 소설로 해석 될 위험조차 내포하고 있다. 이 소설의 지극히 섬세한 문체 양상은 그러한 혐의를 더욱 부추기는 요인이다. 그 문체는 불건전하고 부패해 보이는 삶의 현상조차 신선한 감각적 가치로 포착하고있기 때문이다.
소음을 내며 폭주해대고,「우리 딸아이를 실어 가서 옷을 찢고 겁탈을 해대는」오토바이를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우아하기까지 하다고 묘사하는 문체 심리의 도덕적 배후는 위태롭기 짝이 없는 것일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이 소설의 문장추이를 즐거움을 가지고 뒤쫓을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은 작가의 전략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작가의 서술적 전략은 무엇인가. 풍속과 세태를 담론의 대상으로 삼되 해석하지 않는다는 전략이다. 작가의 진부한 해석적 관점이 섣부르게 담론의 표면에 노출될 때 십중팔구 독자의 정열과 기대는 좌절되게 마련이다. 한번쯤 더불어 음미해 볼만한 문제 제기라고 생각한다. <한용환(소설가·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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