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베스, AP와 6시간 '이벤트 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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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륜 구동 차의 창문이 열리더니 우고 차베스(52)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얼굴이 나타났다. 폭우를 맞으면서 그를 기다리던 주민들이 '대통령이다!'라고 외치며 몰려들었다. 차베스는 그들의 손을 일일이 꼭 잡아주며 볼과 머리에 키스했다. 일부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AP통신이 9일 차베스 대통령을 이례적으로 6시간 동안 동행 인터뷰했다. 베네수엘라 남부 평원과 목장을 헬기와 자동차로 돌아보는 민정시찰에 동행해 '포퓰리스트(대중인기영합주의자) 지도자'의 속내를 들여다보았다. 차베스가 서방 언론에 동행 인터뷰를 허용한 것은 민영 방송국 RCTV의 문을 닫게 한 뒤 전 세계적으로 "언론 탄압"이란 비판이 거세게 일자 이를 무마하려는 홍보성 이벤트를 벌인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요지.

"나를 가장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은 가난이다. 가난이 나를 반항아로 만들었다."

차베스는 인터뷰 시작부터 빈민에 대한 애정을 강조했다. 실제로 그는 가난한 사람들과 특별한 교감을 나누는 듯 보였다. 몰려든 사람들은 그에게 '집을 지을 수 있게 도와 달라, 치료를 받게 해 달라'며 이것저것 부탁했다. 차베스는 요구사항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보좌관들에게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재임기간 8년 동안 빈곤층이 줄었다는 정부 통계를 제시하며 자랑했다. 병원과 도로를 포함해 좋아진 게 한둘이 아니라고 늘어놨다.

그는 "성과에 만족하지만 아직 승리를 노래하진 않겠다. 갈 길이 멀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의 반대 세력들은 원유 수출로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인 것을 고려하면 그가 재임 중 거둔 경제적 성과는 보잘것없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차베스는 미국을 제국주의자라 부르며 반미 전도사를 자임하면서도 미국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이중적인 면모를 보였다. 그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서부영화를 특히 즐기며,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너무 좋아해 세 번이나 봤다고 털어놨다.

한밤중에 장관들과 고무공으로 야구 놀이를 하기도 하지만 사생활은 별로 누리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그 이유에 대해 "나를 암살하려는 음모 때문"이라며 "개인적인 삶으로 말하자면 나는 감옥에 갇힌 죄수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터뷰의 상당 시간을 자신에 대한 비판을 해명하는 데 썼다. '종신 대통령을 노리는 게 아니냐'는 질문엔 "선거에서 재선될 때만 연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임 횟수 제한을 없애 2012년 대선에 출마할 수 있도록 헌법을 고치는 방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이미 선언했다.

RCTV를 문 닫게 한 이유에 대해선 "2002년 나를 몰아내려고 했던 쿠데타를 지지했고, 여러 차례 법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RCTV는 차베스의 방송국 폐쇄 조치에 불복해 연방법원에 제소해 놓은 상태다.

차베스는 "비판적 언론은 있어야 한다"면서도 "민영 방송국이 쿠데타나 암살을 조장한다면 면허를 갱신해 줄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놨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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