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의 정치참여(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김우중대우그룹회장의 대선출마설로 정계와 재계에 갑자기 번지기 시작했던 파문이 대우측의 부인으로 일단 진정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로 생각된다. 물론 김 회장이 직접 자신의 정치 참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선언적 의사표명을 한 것은 아니어서 앞으로 그의 정치인으로의 변신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하긴 이르다.
우리나라 재계의 지도급 인사가 대통령후보로 나서는 문제를 두고 각 정당은 표의 득실을 점치고,재계는 재계판도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을 연출했지만 우리는 이를 계기로 정치권력과 경제의 건전한 관계의 설정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다시 한번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현재의 국가상황은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재계의 지도자들은 경제발전의 주역으로 계속 남아 축적된 역량을 경쟁력 강화와 경제난국 타개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국민 경제에 부과되고 있는 무거운 과제들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경제계 내부의 역량을 축내지 말아야 하는 것이 그 첫째,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실용주의적 근거보다 더 중요한 사회정의론적 시각에서는 대기업 그룹총수의 정치권력 추구가 한층 더 부정적으로 비칠 수 밖에 없다. 군부의 정치적 중립이 보장되는 권력구조속에서 재력과 정치권력의 결합을 거부하는 국민정서가 팽배해지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더구나 대기업그룹이 경쟁적으로 직접 정치참여나 정치권력과의 밀착을 통해 기업이익의 보호에 나서게 된다면 이는 국가발전의 정도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대기업그룹은 정치권력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정치권력은 대기업에 손을 내밀지 않고도 각각 본령에서의 자기창달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정주영 전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정계진출과 김우중회장의 정치참여설을 보고 우리가 새삼 확인하는 것은 우리의 정치·경제 활동구조가 바로 그같은 원칙위에 확고히 세워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경제인의 경제활동 전념 의욕은 한편으로 당사자 개개인의 판단에 달린 문제이기도 하지만,정치가 하기에 따라선 그들의 정치권력 추구 동기가 증폭,또는 축소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미 국민당과 현대의 관계에서 지적돼온 것처럼 설령 제2,제3의 재계출신 정치인이 나오더라도 기업의 물적·인적자원이 정치에 부당하게 동원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의 정치와 경제가 지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자기충실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지속돼온 양자관계에 일대변화가 일어나야 하며 그 변화가 지연되는 동안 정치와 경제의 양쪽이 입는 손실은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