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안 엇갈린 부장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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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61년 5월 창설이래 일관해온 남산의 구호다.
그러나「국가안보와 관계되는 국내외 정보수집과 국가보안법 등에 규정한 범죄수사」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정치공작의 증거가 두드러지면서 이 구호는 무색해졌다.
정권안보를 위한 하수인이란 표현과 함께 인권을 탄압하고 정치에 깊숙이 개입함으로써 「음지」에서의 많은 공이 인정받지 못한 면이 있다.
남산은 초대 김종필 부장시절 공화당 창당을 주도하는 등 정보정치의 선봉임을 자인했고 JP는 증권파동·위커힐 사건 등 소위 4대 의혹 사건으로 물러났다.
육사 5기로 5·16에 가담, 3대 부장에 취임했던 김재춘 부장은 JP중심 8기와의 주도권 쟁탈전에서 패퇴, 5개월만에 거세됐고 반 혁명사건으로 구속되는 수난을 당했다.
중정 창설 후 l0년간 5·16주체인 5 김씨가 부장을 이어가면서 정보정치의 얼룩은 더해졌고 김형욱 시절에는 극에 이르렀다. 공작정치에 무력까지 도입한 그는 민정이양시의 공로로 6년 3개월을 재임했고 갖가지 이권에 개입, 자신을 살찌우면서 남산을 월권기관으로 인상 지웠다.
샌님스타일의 김계원 부장은 김형욱의 높은 악명 덕에 표적에서는 벗어났으나 70년 김영삼 대통령후보 배제작업은 제대로 해냈었다. 김형욱의 부장 재임기간 중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박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따르던 이후락 부장은 정치공작을 본궤도에 올린 장본인이다.
71년 10·2 항명파동을 계기로 김성곤·백남억·김진만·길재호 등 4인 체제를 쓸어낸「제갈 조조」HR는 정보부내에「풍년사업」본부를 설치, 유신을 성사시키는 주역이 됐다,
군법무관시절 곤경에 빠진 박정희 장군을 도운 인연으로 5·16과 동시에 중정 차장에 기용됐던 신직수 부장은 37세의 나이에 검찰총장으로 발탁돼 물경 7년 7개월이란 최 장수 기록을 남겼다. 이어 법무장관으로 2년을 재임, 유신에 공을 세웠던 그는「정치」자체가 말살된 시절, 별 어려움 없이 3년간의 남산부장을 지낸 관운을 누렸다.
박 대통령과 육사 동기·동향(경북 선산)으로서 보안사령관·건설부장관을 지낸 김재규는 어수선한 유신말기에 차지철 경호실장과의 충성경쟁에서도 탈락, 결국 박 대통령에게 총을 겨눴고 총살형에 처해졌다.
전두환 보안사령관 주도의 12·12에 가세, 중정의 마지막 부장이 된 유학성씨는 축소 개편된 안기부의 첫 부장이 됐고 주눅든 당시 야당을 주머니 물건 다루듯 하며 2년 남짓 역임했다. 당시 야당인 민한당 공천 등에 남산부장의 입김이 잔뜩 스몄고 유부장의 친지들이 끼여있는 것은 공공연한 얘기다 .이후 국회로 진출, 몇 차례나 국방위원장을 역임, 오늘에 이른다.
외교관 출신으로 전무후무하게 남산부장이 된 노신영 부장은 2년 8개월간 자리를 지킨 후 총리에 발탁, 한때 여당 차기대권주자로까지 부상했던「행운아」였다.
노 부장을 이은 장세동 부장은 5공 출범 이래의 경호실장으로서 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남산의 위세를 한껏 높이면서 정치 판을 주름잡았고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위원과 후계경쟁을 벌이는 위치까지 올랐었다.
5공 말기·6공 초반의 남산 책임자였던 안무혁 부장은 6공 출범 3개월만에 노 대통령의 총애를 받던 박철언 의원과의 불화 등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배명인·박세직 부장은 여소 야대 정국상황에서 안기부의 개혁을 자청하며 기구축소·국회감사수용 등을 밝히는 등 변신을 도모했지만 공안정국파동으로 7∼8개월만에 하차했다.
별을 달지 못한 채 81년 대령 예편한 이상연 부장은 관료로 변신, 서울시 부시장·대구시장·안기부 1차장·보훈처장· 대통령 민정수석을 지내는 등 잘 풀리다 내무장관이 됐고 3월 개각 때 남산 부장까지 됐으나 중립내각구성에 따라 7개월만에 주저앉아야 했다. 안기부의 정치적 중립선언 등의「자구」노력도 무위가 된 것이다.
일각에선 노 대통령이 그의 유임을 생각했었다고 하지만 흑색유인물사건의 와중에 터진 또 다른「도청실패사건」으로 경질이 불가피했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의 임기 4개월을 앞둔 남산부장의 불가피한 경질에 따라 취임한 이현우 부장은 장세동 부장처럼 공화국출범과 함께 경호실장으로 있다 발탁된 경우인데 노 대통령의 분신으로서 이 부장이 무리는 하지 않으리라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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