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덤핑판정 지나치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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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계경제는 자유무역주의를 기본으로 재편될 수 밖에 없다는게 미 행정부나 경제전문가들의 주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미 자유무역협정은 보호주의적 입장에서 다루어지고 있으며,특히 임기말의 부시정권은 선거전략의 한 방편으로 자국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보호조치를 지나치게 취함으로써 미국은 공정한 무역국가라는 인식을 스스로 저버리고 있다.
미 상무부가 한국산 반도체에 대해 최고 80%를 넘는 고율의 잠정 덤핑관세를 부과한 조치도 바로 우리가 경계하고 있는 미측 과잉반응의 한 결과다. 그같은 조치는 결코 양국 어느 쪽에서도 합리적으로 수용될 수 없다는건 미국자신이 오히려 잘 알 것이다.
외국기업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면 1차로 덤핑 예비판정 제도를 활용해서 엄청난 타격을 주고 그 다음 단계에 들어서는 서서히 양보를 얻어내는 미국의 통상교섭 스타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써오던 방식이다.
그러나 우리는 공정한 무역을 주창하고 있는 미국이 지나치게 자국편익 위주로 덤핑제도를 운용하고 있는데 대해 불안하기 그지없다. 미국은 한국이 이미 대미 무역적자국으로 바뀌었으며 미 시장에서의 교란행위가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도 나타나지 않았음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미측의 일방적이고도 충격적인 조치는 한국에서도 미 상품에 대해 같은 대응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제기될 수 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세계경제전쟁은 매우 냉혹해서 새로운 사업자의 부상을 용서하지 않는다. 한국이 수출 주종품목으로 내세우고 있는 기억소자의 경우 미국과 일본이 지배하고 있는 방대한 세계반도체시장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일부 품목의 개발과 생산에서 한국의 추월을 초기단계에서 차단시켜야 한다는 미일의 전략이 있을 수 있겠으나 우리는 그같은 시장경쟁은 공정한 룰에 의해서 이뤄져야만 한다고 본다.
부시행정부에 이어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시되는 민주당의 클린턴후보가 집권하게 되면 보호주의무역 색채가 짙은 그의 대외발언으로 볼때 적잖은 통상마찰이 빚어질지 모른다.
우리정부는 임기말의 미 공화당정부와 현민주당후보의 무역정책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가를 면밀히 검토하고 업계와 공동전략을 조속히 세워야 한다. 양국 행정부의 교체시기에 맞물려 자칫 서툰 대응이 나오지 않도록 충분한 자료를 통해 상호납득하는 선에서 덤핑문제를 풀어 나가야 할 것이다. 미 상무부와의 협상을 통해 덤핑조사 중지협정을 체결하는 문제도 관계부처간의 손익협의를 거쳐야 하며,예상되는 또 다른 품목에 대한 미국의 덤핑제기에도 철저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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