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소말리아 돕기 쌀봉지/배명복 파리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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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프랑스 초·중·고교생들은 코흘리개 유치원 어린이에서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지난 20일 1㎏들이 쌀 한봉지씩을 들고 등교했다.
대학교를 제외한 프랑스 전국의 7만4천개 각급 학교별로 이날 프랑스에서는 「소말리아 쌀 작전」이 실시됐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 소말리아 어린이를 구하자』는 이 「작전」의 취지에 공감,쌀 한봉지씩을 들고 학교에 간 것이다.
프랑스 전국의 우편집배원들도 이 작전에 동참,학교별로 거둔 쌀을 각 기차역까지 운반하는 역할을 자청해 맡았고 프랑스 국철인 SNCF는 전국 각지에서 거둬들인 쌀을 남불의 마르세유항까지 무료수송하는 방법으로 작전을 도왔다.
이날 거둔 쌀은 모두 5천t. 1㎏짜리 봉지쌀로 따져 5백만 봉지가 이날 하룻동안에 모인 셈이다. 쌀소비가 많지 않은 프랑스에서 자녀를 둔 가정마다 갑자기 쌀을 구입하는 바람에 각 동네 슈퍼마킷마다 봉지쌀이 동나는 기현상마저 빚어졌다.
이 작전을 둘러싸고 프랑스내에서는 적지않은 논란이 있었다. 소말리아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는 서구사회의 무능함을 위장하는 술수라는 비난에서부터 도와주려면 프랑스에서 나는 밀이나 밀가루로 할 것이지 왜 하필이면 쌀(주로 미국산)로 하느냐는 비판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논란이 뒤따랐다. 근본적으로 국제정치·경제차원의 문제해결이 선행돼야 한다는 여론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들은 이날 자녀들 손에 쌀 한봉지씩을 들려보냈다. 단돈 10프랑(약 1천5백원)짜리 값싼 자비심에서인지 말끝마다 인도와 박애를 내세우는 프랑스 사람들의 고귀한 인류애 때문인지는 알길이 없다. 또 그것이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진짜 중요한 점은 하루에도 1천5백명의 소말리아 어린이들이 굶주려 죽어가고 있고 프랑스 사람들은 이 어린이들에게 먹을 쌀을 보낸다고 슈퍼마킷을 동나게 했다는 사실이다. 소말리아의 참상과 함께 쌀봉지를 든 프랑스 어린아이들의 고사리손을 머리에 떠올리며 필요한 것은 백마디 말보다 한가지 작은 행동,바로 그것이라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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