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산골마을 집배원 그가 배달하는 '따스한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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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엔 눈까지 내렸다.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산골마을 별정우체국서 25년째 일하는 변영훈(47) 집배원은 그래도 언손을 비비며 부지런히 편지를 챙긴다. 오늘 그 앞으로 떨어진 우편물은 약 90여통. 이젠 눈감고도 다닐 만큼 익숙한 길이지만 행여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벌써 3년째 매일 함께 한 1백㏄짜리 오토바이마저 왠지 시동을 걸 때부터 시원치 않다. 그래도 그는 주저없이 우체국 문을 나선다.

아쉬움 속에 한해를 묻고 또다른 1년을 마중하는 요즘인데도 그 흔하던 연하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긴 이런 벽촌에서 알록달록한 성탄카드나 연하장을 받을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대신 부쩍 늘어난 각종 고지서나 판촉물을 집어들 때마다 '많이 달라졌구나'하는 감회가 인다. 돌이켜보니 들고 나가는 우편물도 많이 줄었다. 언제부턴가 동네 사람들의 손에 휴대전화가 하나씩 쥐어지기 시작하면서다.

하지만 그가 하루도 빼먹지 않고 들르는 집들은 십수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줄지 않았다. 그 집 주인들은 여전히 그가 전날밤 마실 나가 아직 안들어온 가족인 양 애타게 기다린다. 받을 편지도, 건네줄 우편물도 딱히 없으면서. 윗마을 보룡리와 면사무소에서 30여리 떨어진 삼가리 사람들도 매한가지다. 변씨가 이곳 우체국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편지를 대신 읽거나 써달라고 부탁하던 노인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그들의 아들.딸들이 어머니.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변씨를 기다리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배달하길래 단월면 주민들은 변씨가 오기를 기다릴까. 그게 궁금해 3일 동안 온통 하얗게 눈이 쌓인 마을 곳곳을 그와 함께 누비고 다녔다.

양평 단월=표재용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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