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주문, “피키피키 피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호 13면

‘메종 드 히미코’는 어느 날 갑자기 “나는 게이야”라고 아내에게 선언한 뒤 게이 바의 마담이 된 히미코와 그(그녀)의 딸 사오리, 그리고 히미코의 연인인 청년 하루히코의 이야기다.

-이누도 잇신의 영화, ‘메종 드 히미코’

사오리는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게이의 삶을 찾아 떠난 아버지 히미코를 만나게 된다. 아버지의 젊은 연인인 하루히코가 찾아와 암에 걸린 히미코의 간병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사오리는 거절한다. 나라도 거절할 것이다. 게이로 살겠다고 처자식을 버린 아버지 따위야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이람? 그러나 사오리는 아버지 히미코가 게이들을 위해 지은 게이 양로원 ‘히미코의 집’으로 히미코를 간병하러 간다. 왜 갈까? 사오리는 돈에 쪼들리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연인인 하루히코가 히미코를 간병해주면 돈을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돈 때문에, 사오리는 아버지 히미코를 만나러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버지 히미코와 여러 명의 늙은 게이를 만나게 된다. 처음엔 그 집에 살고 있는 늙은 게이들에게 “변태!”라는 말도 서슴지 않던 사오리는 차츰 그곳에 머무는 게이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고, 나중에는 그들과 친구가 된다.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아버지, 히미코마저 용서하게 된다. 그렇게 게이 양로원을 들락거리는 사이에 어느덧 사오리는 아버지의 연인인 하루히코를 사랑하게 된다.
어떻게 아버지를 사랑하는 남자를 사랑하게 될 수 있을까?
나는, 적어도 이 영화에 나오는 하루히코와 같은 남자하고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왜? 하루히코는 잘생겼다. 와이셔츠가 이토록 잘 어울리는 남자라니! 흰색 정장 수트에 슬리퍼를 신어도 멋져 보이는 남자이니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하루히코의 멋진 엉덩이!

그러나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하루히코는 사오리와 섹스는 할 수 없었다. 방을 마련하고, 시트도 새로 깔고, 키스를 하고 가슴도 더듬었지만 그러나 애무는 거기서 끝이다. 가슴만 더듬고 있는 하루히코에게 사오리는 묻는다.
“만지고 싶은 곳이 없는 거지?”
이쯤 되면, ‘이거 뭐야? 이렇게 끝나버리는 거야? 마음속으로 아무리 사랑해봤자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는데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어?’ 실망을 하게 되련만, 이 영화는 바로 이때“피키피키 피키!”라고, 애니메이션 ‘레인보우 전사’의 마법의 주문을 가져와 현실의 불가능을 희망으로 바꾸어놓는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혹여 불가능한 사랑, 불가능한 도전을 하고 있다면 그냥 한 번 미친 척하고 ‘히미코의 집’에 사는 사람들처럼 이렇게 외쳐보는 것은 어떨까요?
“피키피키 피키!”
‘어차피 결국 실패하고 말 거야, 안 될 거야, 그런 일은 정말 있을 수 없어’, 의기소침하고 있을 바에야 어떤 식으로든 소리라도 한 번 크게 내질러보는 편이 속 시원하지 않을까요? 뭐 손해 볼 것도 없잖아요?

---
이명랑씨는 시인으로 등단한 뒤 소설가로 건너가 소설집『나의 이복형제들』『삼오식당』『슈거 푸시』 를 발표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