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탄·사과탄을 기억하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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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는 최루탄 전성 시대였다. 당시 대학가는 연일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그때 대학 생활을 한 386 세대들은 한결같이 최루탄 냄새를 가장 대표적인 추억으로 꼽는다. 지금의 신세대들이 대학 생활하면 흔히 떠올리는 미팅이나 축제, 그리고 취업 고민과는 담을 쌓고 살아야 했다.

최루탄이 대학의 일상을 파고들었던 탓에 386세대들은 최루탄에 대한 상식이 풍부하다. 이들은 최루탄을 흔히 사과탄이라고 부른다. 시위 진압에 나선 전투 경찰이나 사복 경찰(일명 백골단)이 던지는 최루탄이 사과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루탄 냄새로 후각이 마비되기 전까지는 최루탄에서 사과 냄새가 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직격탄은 유탄 발사기에 꽂아 쏘는 것이어서 직접 맞을 경우 크게 다치거나 심지어 사망할 수도 있다. 이밖에 '지랄탄'이라는 희한한 이름도 있었다. 이 최루탄은 시위 진압용 차량에서 발사하면 전후좌우 할 것 없이 사방으로 튀면서 지속적으로 최루 가스를 분출했다. 간질병 환자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게거품을 토해내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라고 해서 지랄탄이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

80년대의 시위 대학생들은 최루탄 연기에 차츰 익숙해지면서 어떻게 하면 더 잘 견딜 수 있는지를 실험하기도 했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최루탄 중화제다. 마스크나 수건을 입에 두르고, 거기에 치약을 묻혀 두었다. 최루탄 가스에 장시간 노출되면 이런 장비도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지만, 그나마 잠시 동안만큼은 최루탄의 위력을 잊게 해주었다. 최루탄 연기 자욱한 캠퍼스를 다녔던 직장인 이대진(44)씨는 "치약 자체의 냄새가 강하기도 했지만, 치약에서 느껴지는 일상의 편안함이 좋았다"면서 "치약 냄새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서 시위도 견딜 만했다"고 설명한다.

상당수 386 세대들이 최루탄 냄새와 함께 떠올리는 것이 라일락 향기다. 당시 대학 캠퍼스에 유난히도 많았던 라일락 꽃이 짙은 향기를 내뿜을 때쯤 본격적으로 시위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의 여파로 대학가의 봄은 시위로 시작해, 시위로 끝났다. 이 때문에 80년대 대학생들은 최루탄에 실려온 라일락 향기를 맡으며 저항과 현실 도피 사이에서 고민했노라고 추억한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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