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이자 오르자 ‘CD가 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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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변동금리 대출은 95%에 달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

이코노미스트회사원 조모(36)씨는 요즘 이자 부담이 커져 머리를 싸매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기준인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오르면서 이자도 덩달아 늘어난 탓이다. 조씨는 지난해 초 아파트를 장만할 때 은행에서 변동 금리로 1억원을 빌렸다. 당시 금리는 5.4%로 한 달 이자가 45만원 정도였다.

국내에서 유일한 고정 금리 상품인 한국주택금융공사의 모기지론으로 빌릴 때보다 이자 부담이 적었다. 그러나 1년여가 지난 지금 상황은 달라졌다. 그는 “금리가 6.3%로 올라 1년에 100만원 가까이 더 내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고정 금리 상품으로 갈아타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하소연했다.

조씨처럼 빚을 내서 집을 마련한 사람이라면 남의 일 같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11월 급등했다가 올 들어 안정세를 보이던 CD 금리는 4월부터 다시 오름세다. 특히 5월 17일에는 5.07%를 기록했다. 2001년 8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CD는 은행이 단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증권이다. CD 금리는 한국증권업협회에서 날마다 발표한다. 그만큼 시장 수익률을 제때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화·대신 등 10개 증권사가 신용등급이 AAA급인 국민·하나 등 7개 시중 은행이 발행한 91일 물의 거래 수익률 또는 호가 수익률을 한국증권업협회에 통보하면 이 가운데 가장 높거나 낮은 수익률을 뺀 나머지 값의 평균치로 금리 수준을 정한다. 91일 물이란 만기 3개월짜리 CD를 가리킨다.

국내에서는 단기 금리의 지표가 될 만한 유통 금리가 마땅치 않아 CD 금리를 쓰고 있다. 외국에선 3개월, 6개월, 1년으로 만기가 다양한 영국 은행 간 대출 금리인 리보(LIBOR) 금리를 표준으로 쓰지만 국내에서는 3개월은 CD 금리, 1년은 국고채 금리를 택하고 있다.

국내 은행은 대부분 91일 물 CD에 적용되는 금리에 일정한 이자율을 더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CD 금리가 오르면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덩달아 상승한다.

살 사람 적고 변동성 큰 CD

이런 CD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는 이유는 뭘까. 은행이 ‘돈 가뭄’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 단기 자금은 CD로, 장기 자금은 은행채로 마련하는 은행에서 예금 등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부터다. 은행의 저축성 예금(정기예금+수시입출금식 예금)은 지난 연말 이후 4개월 동안 10조원 넘게 줄었다.

이와 달리 고금리를 앞세운 증권사의 자산관리계좌(CMA)는 8조원 이상 늘었다. 또 국내외 증시 활황으로 해외펀드(역외펀드 제외) 수탁액도 14조원, 국내 주식형 펀드도 5조원 이상 늘었다. 경기 회복 조짐이 보이면서 중소기업의 대출액은 올해 들어 4월까지 22조2000억원 늘어났지만 ‘자금줄’인 예금에 비상등이 켜진 것이다.

은행권은 고금리 특판 예금을 잇달아 내놓으며 예금 유치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인 모습이다. 대출에 필요한 ‘실탄’을 확보하려면 그나마 CD 발행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한은행 자금부 관계자는 “대출 수요를 맞추려면 CD 금리를 올려서라도 발행 물량을 늘려야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은행권이 단기 자금을 마련하면서 이익도 내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렸다는 분석도 있다. 최석원 한화증권 채권분석팀장은 “은행채 발행 등 다른 자금 조달 방법도 있지만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CD 금리와 연동해 있어 은행들이 수익을 내기 유리하다”고 은행권이 ‘고금리 CD’로 눈을 돌리는 배경을 설명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돈값인 금리는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그러나 CD 금리 시장에서는 이런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만기가 돌아오는 CD 자금을 다시 CD로 막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꼬리가 머리를 흔드는 격

한국은행은 지난해 11월 정부의 부동산 대책 등에 따라 시중에 풀린 돈을 거둬들이려고 지급준비율을 높였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은 고객이 언제 찾아갈지 모를 돈을 은행에 더욱 많이 쌓아두느라 빌려줄 돈이 모자라게 됐다.

이를 메우느라 CD 발행을 늘렸는데 만기가 돌아오면서 이를 갚을 돈이 여의치 않자 다시 CD를 발행하고 있는데 이를 사줄 사람이 마땅치 않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산운용사 등은 경기 회복 기대감 등으로 금리가 더 오르리라 보고 CD를 적극적으로 사려고 하지 않는다”며 “때문에 은행은 CD 금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꼬리가 머리를 흔드는’ 왜곡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CD 하루 거래 대금은 4000억원대다. 4월 말 현재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18조원인데, 이 가운데 CD 금리에 따라 움직이는 변동 금리 대출은 200조원이 넘는다. 겨우 4000억원대의 자금 흐름이 200조원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CD 발행 경쟁이 치열해지면 CD 금리는 물론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급등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심지어 우리은행 관계자는 “은행에서 91일 물 CD는 거의 발행하지 않아 호가로만 금리가 정해지기도 한다”고 전했다.

CD 금리는 변동성도 꽤 큰 편이다. 시중은행이 발행하는 양에 따라 금리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의 조영무 연구원은 “은행이 일시적으로 CD를 많이 발행하면 CD 가격은 내리고 금리는 오르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채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은 CD를 금리 지표로 쓰는 건 예전부터 문제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CD 금리의 실효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다양한 대안이 나오고 있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8월부터 ‘코리보(KORI BOR)’를 대출 금리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외환은행은 올해 2월 코리보를 기준 금리로 도입했다.

리보를 본뜬 코리보는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국내 외국계 은행 등의 기간별 금리를 통합해 산출한 단기 금리를 말한다. 안금호 기업은행 자금부 팀장은 “코리보는 1주일짜리부터 1년짜리까지 만기별로 10가지 금리를 제공해 고객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넓다”고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또 다른 은행 자금부 관계자도 “코리보 금리를 기준으로 환매조건부채권(RP)을 거래하는 등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코리보 담당자는 “한국은행에서도 코리보를 기준 금리로 삼는 것을 환영한다”며 “코리보 거래가 늘면 단기 시장 금리를 좀 더 정확하고 투명하게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코리보가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등 한계는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이 통화량을 조절하기 위해 발행하는 통화안정증권 91일 물도 CD 금리의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통화안정증권이 CD 금리보다 대표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기준 금리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 연구원은 “한국은행이 통화관리라는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발행하는 증권으로 시중 금리를 결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국은행이나 시중은행이나 여러 단기 금리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지만 서로 대안 마련 책임 등을 떠넘기는 양상”이라며 “지금 중요한 건 빨리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은경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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