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70년대 캠퍼스 풍속도] <하> "70년대도 된장녀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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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만해도 여학생들이 신는 스타킹을 뱀껍질이라며 싫어했데."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의 '경희 역사자료 특별전'이 지난 4일 막을 올렸다. 그동안 경희대 대학주보에 실린 만화와 만평을 통해 1955년부터 79년까지의 학창생활을 한 눈에 보여주는 전시다(8일까지 경희대 중앙로). 당시의 사회상부터 등록금 문제, 학업에 대한 고민, 진로에 대한 불안감, 남녀 간의 문제 등 캠퍼스 풍속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윤현주(교육대학원 영양교육전공)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대학생의 이성교제는 최고의 관심사였던 같다"며 "그러나 스타킹, 미니스커트에 대한 비난 등 사회 규격에 맞춰야 하는 여학생 모습은 지금과 확연히 달라 신기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1950~70년대는 남성의 가부장적 태도가 두드러진 시대였다. 대학생들의 의식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짙은 화장을 한 여학생, 스타킹을 신은 여학생, 재잘거리며 빵집을 다니는 여학생을 '꼴불견'이라고 했다. 지금의 '된장녀'를 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70년대에도 '된장녀' 있어=예나 지금이나 남성이 바라보는 여성 중 '된장녀'의 이미지를 가진 사람은 매력도가 떨어지는 듯 하다. 1971년 9월자 대학주보는 '가방 안 든 여학생 각성할 수 없을까'라는 글을 실었다. "여대생이 책가방을 들고 다니면 멋이 없다고 해 노트 한 권과 알 수 없는 영문책 하나를 옆에 끼고 핸드백을 달랑 들고는 다방이다 빵집이다 몰려다니며 재잘대는 모습은 정말 꼴불견"이라는 것이다.

또 "가지런히 서적과 도시락을 넣은 책가방을 들고 청초한 매무새로 캠퍼스를 사색하며 걷는 여대생이 그리운 교정이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70년 5월자 대학신문엔 '뱀껍질 스타킹이 대학생 논쟁거리'라는 글이 실렸다. 한 남학생은 "지난 토요일 분수대 앞에서 옥신각신하시는 남.여학생들을 만났다. 비위 좋은 남학생이 여학생의 스타킹을 보고 뱀 껍질 같다고 능글거리신 모양이다. 여학생을 놀리는 남학생도 그렇지만 기어코 뱀 껍질 같은 스타킹을 신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남학생들의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학주보에는 '각선미의 고속도로! 팬티 스타킹' 'LK스타킹 대매출 100% 대폭할인' 등의 광고가 자주 실려 여학생들의 복장이 점차 자유화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샤넬 No.5 쓰면 인격 만만히 본다=여학생의 화장과 머리 모양에 대한 남학생의 참견도 끊이지 않았다. 67년 5월자 대학주보는 정경대 정외과 4년 남계인 학생의 기고를 통해 당시 여학생의 짙은 화장을 비판했다. 남씨는 '천하지 않는 신선한 용모화장을'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코엣(Code.남녀 공학 대학의 여학생-나는 여대생을 이렇게 부른다)의 화장법은 대단히 중요하다.

짙은 아이셰도우와 떡을 해 바른 듯한 화운데이션, 누런 살빛 색깔의 루즈, 몸을 들썩일 때마다 풍겨오는 셔넬 넘버 화이브 향기. 그런 코엣을 대할 때마다 나는 그의 인격을 만만히 보게 된다"며 "결코 화장 속의 코엣은 그 매력이 오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당시엔 여학생의 옷차림에 대한 강연도 자주 열린 것 같다. 대학주보 67년 4월자는 국제복장학원장 최경자 여사와 성미 쥬리아 학술과장 이경연 여사가 조언하는 '복장과 미용' 사진을 담았다. 산뜻하고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을 풍기는 차림새는 '너무 유행에 치우치지 않는 것'으로 정의했다.

◇여학생 6%만이 '꼭 성 지켜야 하나'=남성주의의 사회 풍토는 학생들의 성 의식도로도 가늠할 수 있었다. 73년 5월자 대학주보는 특별 기사로 남.여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이성교제 관심도' 측정 설문조사를 벌였다. 이중 39%는 '현재 이성교제 중', 34%는 '경험은 있으나 지금은 없다'고 답했다. 27%는 무(無) 경험자였다. 이성교제 유(有) 경험자 146명을 대상으로 데이트 장소를 조사한 결과 34%가 '산책하기 좋은 교외'라고 답했다. 고궁(26%), 다방(10%) 등이 뒤를 이었고 이 외에 음악감상실.극장.집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또 '성(性) 문제 지켜야 하나'의 질문에는 여성 62%, 남성 37%가 '꼭 지켜야 한다'고 답했다. '꼭 지켜져야 한다는 터부(taboo)는 무시되어야 한다'에 대해서는 남성의 19%, 여성의 6%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여기서 신문은 여학생 중 '그렇다'고 답한 학생이 '6%나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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