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경상수지 적자, 정말 괜찮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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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96년 봄 한국은행 간부들과 기자들 간에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다. 한은이 그해 경상수지 적자를 79억 달러로 전망한 게 발단이었다. 그해 4월까지 이미 65억 달러의 적자가 난 터였다. 기자들로선 한은 전망을 납득할 수 없었다. '벌써 65억 달러나 적자가 났는데, 무슨 수로 연말까지 적자를 79억 달러로 막을 수 있느냐'는 의문 때문이었다. 당시는 수출이 부진하고, 서비스부문의 적자도 날로 커지던 때였다. 어디를 둘러봐도 좋은 게 없었지만, 한은 간부는 "적자를 79억 달러로 막을 수 있다"고 강변했다.

그해 경상수지 적자는 한은 전망치의 세 배에 달하는 231억 달러에 달했다. 다음해에도 적자는 이어졌다. 금융회사들은 해외에서 단기자금을 빌려 적자를 메우기에 급급했다. 그런데도 정부와 한은은 "한국 경제는 펀더멘털이 튼튼하다"고 끝까지 우겼다. 급기야 97년 말 나라 곳간이 바닥나며 외환위기가 터졌다. 해마다 엄청난 적자가 났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꼴사나운 것은 외환위기가 터지자 "진작부터 외환위기의 가능성을 경고했다"고 면피에 나서는 한은과 정부 관료들은 왜 그리도 많던지. 경상수지 적자를 간과한 점에 대한 진지한 반성은 찾기 힘들었다.

꼭 10년 만인 올해, 다시 경상수지가 수상하다. 4월 경상수지 적자가 19억 달러로 월간으로 외환위기 후 최대다. 올 1~4월 적자도 35억 달러를 넘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경상수지 적자가 늘면 불안하기 짝이 없다. 하물며 외환위기 후 최대 규모라는 데야. 하지만 이번에도 한은은 "걱정할 필요 없다. 올해 20억 달러 흑자가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외국인들이 주식투자에서 벌어들인 배당금을 송금하는 바람에 일시적으로 적자가 났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산업자원부도 "전체 추세를 봐야지 단기 지표에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고 했다.

배당금 요인만 빼면 정말 안심해도 되는 것인가. 영 미덥지 않다. 우선 교육.관광.의료 등 서비스 부문에서 구멍이 계속 커지고 있다. 해외로 해외로 나가면서 서비스 적자가 1~4월 76억 달러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억 달러 는 것이다. 상품수지도 이상 징후가 보인다. 1~4월 대일 무역적자가 100억 달러를 넘어섰다. 20% 증가하며 사상 최대다. 이 기간 대중 무역흑자는 52억 달러로 17% 감소했다. 원화 강세로 일본은 멀어지고, 중국엔 쫓긴 결과다. 그동안 상품 흑자로 서비스 적자를 메우고도 남았고, 대일 적자를 대중 흑자로 충당했는데, 이 구도가 흔들리는 것이다. 한은과 달리 민간 연구기관들은 올해 경상수지가 10년 만에 적자로 돌아서고, 그 규모도 최대 40억~5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엔 적자가 더 늘 것으로 우려한다.

경상수지는 한 나라 경제의 대외경쟁력을 보여 주는 성적표다. 다른 경제지표가 괜찮더라도 경상수지가 나쁘면 그 경제는 병이 든 것이다. 우리처럼 대외의존도가 70%를 넘는 나라는 더욱 그렇다.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지면 소득은 줄고, 실업이 는다는 것은 한은의 '경제지표해설'에도 나와 있다. 혹여 '경상수지가 안 좋아도 전체 경제는 끄떡없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미국처럼 적자가 늘어도 최악의 경우 달러를 찍어내 막을 수 있는 입장이라면 모를까.

게다가 경상수지는 한번 적자로 돌아서면 추세를 되돌리기 쉽지 않은 게 과거의 경험이다. 우리는 85년까지 만성적인 적자에 허덕였다. 80년대 후반 3저 호황으로 흑자로 돌아섰으나 다시 90년부터 97년까지 한 해(93년)를 제외한 7년간 적자였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한은은 경상수지를 둘러싼 심상치 않은 현상을 좀 더 진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환율은 견딜 만한 수준인지, 고질적인 서비스 적자를 줄일 수는 없는지, 역으로 해외에서 배당금을 벌어들일 방도는 없는지 등등. 손바닥으로 적당히 하늘을 가리다가 나중에 일이 커지고 나서 "진작부터 위기를 경고했다"고 둘러댈 게 아니라면.

고현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