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holic] 마을마다 동호회 … 축구만큼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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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티어가르텐 공원에서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시작하는 주말 걷기 행사의 초보자 코스에 등록한 참가자들이 인솔자의 안내를 받아 걷고 있는 모습.베를린=유권하 기자

토요일인 2일 오후 독일 베를린 도심을 감싸안고 있는 이 도시 최대 공원 티어가르텐. 서울 남산공원보다 조금 작은 210만㎡ 넓이의 숲과 녹지대가 평지에 펼쳐져 있어 '베를린의 허파'로 불리는 이 공원 한구석이 갑자기 시끌벅적했다. 우뚝 솟은 67m 높이의 전승기념탑 건너편 파자너리 알레 거리 입구로 갑자기 모여든 인파 때문이었다.

거리 한쪽 벽에는 '걷기 운동 모임 장소'라는 현수막이 큼직하게 내걸려 있다. 그 옆으로 수준별 걷기 코스를 안내하는 진행요원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이들은 'km당 6분 주파' 'km당 7.5분 주파' '걷기 초보자' 등 세 가지 코스의 피켓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 앞에선 10~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참가자들이 팔과 목을 움직이며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대다수가 몸에 착 달라붙는 경쾌한 운동복 차림이었다.

오후 2시. "출발합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진행요원의 인사말이 끝나자 웅성거리던 100여 명의 참가자들이 걷기 시작했다. 베를린 RBB 방송국이 후원하는 주말 걷기 체험 현장의 모습이다.

◆걷는 속도별로 체험자 나눠=맛보기 체험을 원하는 15명 틈에 끼여 3km 구간 걷기에 참가했다. 준비와 설명을 포함해 1시간 코스였다. 평균 걷기 속도는 km당 10분 수준이었다. 천천히 걷기의 두 배를 조금 넘는 속도였다.

주최 측은 "빨리 걷기가 힘든 사람들을 배려해 속도를 느리게 잡았다"고 설명했다. 주변을 둘러봤더니 노약자가 많았다. 시험공부에 지쳐 몸이 갈수록 마른다는 여대생, 사지가 쑤시고 아파 나왔다는 70대 중반의 할머니, 체중이 100kg을 넘어서 힘들다는 50대 비만 여성 등이 힘들게 발걸음을 옮겼다.

◆걷기 전 건강 체크는 필수=일행은 우거진 산책로를 따라 5분 동안 자유롭게 걸었다. 새 소리를 벗삼아 꽃밭과 연못을 지났다. 향긋한 풀냄새가 코를 적셔 왔다. 인솔자가 참가자들을 녹음이 우거진 잔디밭 공터로 안내한 뒤 빙 둘러 세워 놓곤 건강 체크를 시작했다. 그는 참가자들이 심장병이나 당뇨병은 없는지, 지금 현기증이 나지 않는지 등을 의사처럼 꼼꼼히 체크했다. 참가자들의 건강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자 걷기에 필요한 기본 설명을 10분간 했다.

"신발은 발가락과 신발 끝에 엄지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여유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운동복은 걷기에 편하면 됩니다. 하지만 땀 배출을 돕도록 통풍이 잘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뒤 몸을 푸는 스트레칭 체조와 올바른 걷기 자세를 5분간 계속했다.

◆걷기 속도와 자세가 중요=드디어 본격적인 걷기가 시작됐다. 인솔자는 갑자기 엄한 교관이 됐다. 그는 대열의 앞뒤를 오가며 참가자들의 걷기 속도를 조절했다. 또 발걸음과 팔을 흔드는 모양새가 헝클어지면 일일이 바로잡아 줬다. 걷기에는 무엇보다도 속도와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2km 지점에서 70대 할머니 두 분이 낙오했다. 이들은 "쉬었다 갈 테니 먼저 가라"는 손짓을 보내곤 주저앉았다.

팔을 힘차게 흔들며 걷다 보니 어느새 예정된 3km 지점에 도착했다. 이마와 등 뒤로 땀이 송송 배어 나왔다. 5분간 마무리 체조로 호흡을 다시 골랐다. 숨을 내쉴 때마다 몸과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1시간의 걷기 코스가 가져다준 작은 행복이었다.

베를린=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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