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지구,갈림길에서다] 10년 넘게 준비한 일본도 난리인데 한국은 배출량 조사한 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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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산업계는 열심히 준비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스스로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조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에 ‘2008년부터 연간 배출을 1990년에 맞추자’고 제의했다. 그런데 협상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명분에 휘둘렸다.

 97년 교토의정서 체결 당시 회의 주최국이라는 입장 때문에 감축 목표를 ‘1990년도의 94%’로 높게 잡은 것이다. 지금 일본은 목표치보다 15% 정도 더 온실가스를 내뿜는다. 산업계는 자신들은 목표를 달성했지만 가정 등에서 배출량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 추세대로면 2008년부터는 ‘배출권’(용어설명 참조)을 사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와 기업은 90년대 후반부터 매년 8조∼10조원을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쏟아부었다. 배출권을 사려면 매년 6조∼7조원씩을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 2008년 감축 의무가 시작되기 10여 년 전부터 준비한 일본이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준비 안된 한국=감축 의무를 질 것이 유력한 2013년이 불과 6년 앞인데도 한국 정부와 산업계는 갈팡질팡이다. 기업 열 곳 중 아홉은 자기네가 얼마나 온실가스를 뿜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올 2월 중앙일보가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과 함께 에너지 다소비 기업 185곳(대기업 125개사, 중소기업 60개사)에 설문한 결과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조사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든 기업은 10%뿐이었다.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면 된서리를 맞을 ‘에너지 다소비업종’만 골라 조사했는데도 그렇게 나왔다. 기후변화협약과 관련한 인력이 전혀 없는 곳(54%)도 절반을 넘었다. 포스코ㆍSK㈜ㆍGS칼텍스 등 대표 기업들만 어느 정도 대비를 해나가고 있다.
 준비가 미흡한 이유로는 ‘정부의 지원 부족’(24.3%), ‘범국가적 목표 부재’(12.4%) 등을 꼽는 등 ‘정부 탓’을 꼽았다. 산업자원부는 각 기업이 자발적 감축 목표를 세우도록 유도하자고 하고, 환경부는 정부가 목표치를 할당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배출권 거래제(ETS)=온실가스 배출권을 사고 파는 것을 말합니다. 국가 간에 감축 목표를 정한 뒤 목표보다 적게 배출한 나라는 그 차이만큼 ‘배출권(배출할 수 있는 권리)’을 확보하게 됩니다. 이를 다른 나라에 판매할 수 있습니다. 목표를 초과한 나라는 다른 나라로부터 배출권을 사들여 채워야 합니다. 국제 배출권 거래시장에서 형성된 배출권 가격이 낮을 경우는 국내 감축보다 배출권을 사들여 벌충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특별취재팀

팀장=강찬수 환경전문기자
경제부문=박방주 과학전문기자, 권혁주·박혜민·임미진 기자
사회부문=임장혁 기자
국제부문=류권하 기자, 남정호 뉴욕 특파원, 강찬호 워싱턴 특파원,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전진배 파리 특파원
영상부문=조문규 기자
그래픽=박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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