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감정 설화/「야당귀족」 발언 곤욕치른 이환의(의원탐구:13)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구당원 사기 높이려다…” 해명/언론인출신… “정치하려면 얼굴 두꺼워져야”
민자당 광주서갑지구당 개편대회가 있던 지난 9월26일은 정치 초년생 이환의의원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되고 말았다.
이 의원은 김영삼총재 등이 참석한 이날 대회에서 위원장에게 선출된뒤 인사말을 했다. 『때밀이·구두닦이들의 불쌍하고 코묻은 돈이 동교동으로 들어가 엊그제까지 빈둥대며 놀던 사람들이 고급자가용을 타고 다니며 소수 야당 귀족주의에 빠져 있다.』
김대중민주당대표측근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셈이다. 참석했던 당원들도 놀랄정도로 「위험수위」를 넘는 발언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의원은 또 『관청 기밀문서를 빼내 폭로하는 사람이 민주투사가 되고 데모하다 저희들이 휘두른 각목에 맞아 죽은 송장이 광주에 오면 열사가 되는 현실이 되었다』고 재야·운동권·학생 등을 겨냥해 공격했다.
백운동지구당사무실엔 항의전화가 빗발쳤고 고박종철군의 아버지 박정기씨 등 9명은 사무실로 찾아와 농성을 벌였다. 민주당 역시 이를 즉각 비난하고 나섰다. 이 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이처럼 큰 반향을 일으키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13대 대선과 총선,기초·광역의회의원선거,14대총선 등 다섯차례의 선거에서 특정 정당이 이 지역을 휩쓸어 당원들의 사기가 극도로 저하돼 있습니다. 그들에게 무엇인가 한마디 해야겠다는 감정이 앞서 그같은 말을 하고 말았어요. 결과적으로 민주 영령들의 명예가 훼손되고 유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해 깊이 사고하고 있습니다.』
박종철군의 아버지에게는 자신이 박군 사망당시 분향했음을 소개하고프로정치인이 아니어서 실수했다고 사과했다.
그의 정치입문은 5공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윤환청와대비서실장으로부터 제의를 받고 호남출신 인사영입 케이스로 민정당에 입당했다. 13대때 고향 영암에서 출마,30여%의 표를 얻는 등 선전했으나 황색바람에 밀려 낙선했다. 14대 전국구의원에 당선돼 처음으로 금배지를 단 그는 이영일 전의원의 탈당으로 지역구를 넘겨 받은 것이다.
신문기자로 출발,언론사 사장까지 오른 언론인출신이지만 그의 경력 가운데는 특이한 대목이 있다.
경향신문 정치부장 재직중이던 66년 5월 내무부 기획관리실장으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당시 박정희대통령은 대선을 1년 가량 앞둔 시점에서 김성곤씨와 엄민영내무장관을 불러 『야당지 정치부장급 2명을 골라 선거관련 자리에 앉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당초 회사 법률고문으로 있던 정구영 전공화당의장을 통해 당 대변인 자리를 제의받았으나 이를 고사했다. 그는 며칠후 평소 친분이 있던 엄 장관으로부터 『내무부에 들어와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고 1주일여 고민끝에 수락했다고 술회했다. 대선후 그는 전북지사로 발탁됐다. 그러나 그의 관료생활은 5년만에 끝났다.
71년 4월 도지사에서 물러난 그는 박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청와대로 올라갔다. 지난번 대선때 전북지역에서 박 후보의 표가 많이 나오지 않아 질책을 받으리라 각오하고 청와대를 찾았으나 뜻밖의 소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5·16장학재단의 내분과 문화방송 경영난 수습을 위해 MBC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MBC사장으로 언론계에 복귀한 그는 사장재임 9년 3개월이라는 최장수 기록을 남겼다.
그는 『막상 정치판에 뛰어들고 보니 정치부 기자시절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라 얼굴이 좀더 두꺼워져야겠더라』고 말하는 정치인이다.
『차령산맥 이남이 특정정당의 소공화국형태로 전락해서는 곤란합니다. 그같은 정서가 계속된다면 사람이 클 수 없어요. 다리·도로 등의 개설은 한두해 미룰 수 있지만 인맥이 끊어진다면 그 공백은 20∼30년이나 갑니다.』
광주·전남지역의 여권지지 세력이 30%에 이르고 있음에도 표로 연결시키지 못한데는 집권자와 집권당에도 책임이 있다는 그가 프로정치인으로 가는 길목에서 지역정서를 건드렸다는 것은 여간 역설적이지 않다.<신성호기자>
□이환의의원
▲전남 영암출신(61세) ▲서울대 사대졸 ▲경향신문 정치부장 ▲내무부 기획관리실장 ▲전북지사 ▲MBC사장 ▲MBC·경향신문사장 ▲백제예술전문대이사장 ▲민정당 지구당위원장 ▲14대국회의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