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배고파 탈출한 북한판 보트피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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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북한 일가족 네 명이 소형 목선으로 청진을 떠나 동해 900㎞를 항해, 일본 북부 항구에 도착했다. 6일간에 걸친 사투끝에 북한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1987년 김만철씨 일가가 비슷한 경로를 택한 이후 20년 만이다.

이들은 탈북 동기로 주저 없이 배고픔을 들었다. "하루 걸러 빵 한 조각으로 때워야 했다"고 한다. 그동안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매년 100여만t의 식량을 북한에 제공해 왔다. 그럼에도 이런 참담한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분배체계에 심각한 허점이 있다는 것이 다시 한번 드러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의 향후 식량사정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해의 수재에다, 북핵 문제로 국제사회의 지원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 지원량이 전년의 12%인 1만5000t에 불과했다"는 세계식량계획의 평양사무소 대표의 언급은 이런 우려를 더한다. 앞으로 탈북 사태가 가속될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10여 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탈북 행렬은 동북아의 핫이슈로 이미 자리 잡았다.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 북.중 국경을 넘어 중국 등 제3국을 떠돌고 있는 수는 무려 10만여 명이라고 한다. 이 자체만 갖고도 인권 유린 등 숱한 문제들이 파생돼 왔다. 여기에다 해상을 통한 탈북마저 빈번하게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안보와 경제에 심각한 도전이 될 것은 자명하다. 바로 이 점에서 이번 사태가 매우 주목되는 것이다. 특히 그동안 주 탈북 경로로 이용됐던 북.중 국경의 경비가 삼엄해져 선박을 이용한 것이 아니냐는 차원에서 그렇다.

정부는 '남북관계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라는 엉뚱한 구실로 탈북문제를 먼 산 쳐다보듯이 대해 왔다. 인권문제 등에는 눈을 감고 '북한 당국 비위 맞추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봐야 이 문제가 정부 입맛대로 해결될 수는 없다는 점을 이번 사태가 보여준 것이다. 이제 발상의 전환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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