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선진화되는 주식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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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주식시장이 13주 연속 상승했다. 이 같은 주가 상승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국내 경제 상황이 양호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우리 경제는 고도 성장형에서 선진국형 저성장 체제로 탈바꿈했다. 이는 경제 규모가 세계 12위권에 진입하면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변화다. 4%대의 성장이 정상적인 수준이 되면서 경제 회복기와 침체기의 차이가 크지 않은 안정성장 형태로 바뀌었다. 지난 몇 년간 우리 경제의 움직임은 경기 침체가 아니라 구조적인 변화에 따른 정상적인 형태였고, 이는 주가 상승에 밑거름이 됐다.

우리 기업의 체질이 개선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외환위기 이전 우리 상장 기업의 연간 이익은 평균 6조~7조원을 넘지 못했지만 현재는 50조원 수준에 달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의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의 수익성이 높아진 결과다.

세계 경제 안정도 한몫하고 있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의 경제가 연간 2% 정도 성장하고 있고, 중국.인도 등이 새롭게 세계 경제에 편입됐다. 미국 경제는 5년 넘는 성장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지금처럼 세계 대부분 지역의 경제가 활성화된 것은 15년 만에 처음이다.

주식시장의 수요 기반이 넓어진 것도 상승 요인이다. 고도 성장기에는 공장을 지어 상품을 만드는 게 가장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반면 경제가 저성장 국면으로 들어가면 기업을 운용해 얻는 수익과 금융 수익 간에 차이가 크지 않아 금융자산이 늘어난다. 이는 선진국이 공통적으로 겪어 왔던 것으로, 최근 우리 주식시장에 돈이 몰리는 것도 이런 과정의 일환이다.

사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금융자산 축적 정도는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자본투자와 부동산 등 실물투자가 성행했기 때문인데 이제 경제 구조가 바뀐 만큼 주식.채권 같은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주식시장의 규모도 커질 것이다.

주식시장이 단순히 일시적 경기의 호.불황만을 반영할 경우 생명력이 짧아진다. 반면 최근 우리 시장처럼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하면 오랜 시간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주가 상승이 이미 3년여에 걸쳐 진행됐지만 앞으로도 상당 기간 더 올라갈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시장이 바뀌면 투자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 가장 필요한 것은 장기 투자다. 2004년 이후 우리 시장은 1980~90년대 미국 주식시장처럼 장기 상승이 가능한 형태로 바뀌었다. 경제가 선진화됐고 이익도 안정화됐기 때문이다. 이제 비로소 장기투자를 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된 것이다.

또 하나 기업 내용에 충실한 투자를 해야 한다. 우리 시장은 다른 어떤 선진국 시장보다 더 충실하게 기업 이익과 내용을 반영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2002년 미국 대선 때와 2006년 북핵 위기 때를 비교해 보면 이 같은 변화를 명확히 알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한 달 이상 주식시장이 요동을 쳤다. 하지만 우리 시장은 북핵 사태에도 불구하고 하루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우리 주식시장은 기업의 수익성에 영향을 주는 요인과 그렇지 않은 요인을 정확히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가 대세라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이제 주식시장은 개인 투자자가 직접 의사결정을 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해졌다.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다양해졌고, 심도 또한 깊어졌다. 따라서 전문적인 능력을 가진 대행 기관의 필요성이 커졌다. 미국의 펀드가 활성화된 것도 현재 우리와 비슷한 경제 상황이었을 때부터였다.

주식시장은 경제보다 더 빨리 변한다. 우리 경제가 구조조정을 통해 건실해졌듯 주식시장도 선진화 과정을 통해 상승하고 있다. 우리 주식시장이 신뢰감을 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