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불 혼란우려 소극적/유엔 안보리 개편론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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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독 상임국 요구에 “전쟁원인국” 비판/개도국선 “거부권 없애고 다수결 운용을”
유엔역할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안보리개편을 둘러싸고 강대국간,혹은 강대국과 개도국간의 미묘한 기류가 유엔에 조성되고 있다.
이같은 기류는 현 유엔안보리 구조가 국제현실을 반영치 못해 개편돼야 한다는 그동안의 논리를 반영한 것이지만 여러나라가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노리고 있어 양상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일본과 독일은 현재 개회중인 47차 유엔총회에서 상임이사국지위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의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외상은 지난 22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경제적인 중요성을 강조하며 유엔창설 50주년인 95년까지 일본이 상임이사국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미국(25%)에 이어 13%의 유엔분담금을 냈던 재정기여도 등을 들어 안보리의 개편과 상임이사국 지위를 강력히 주장해 왔다.
독일의 클라우스 킨켈외무장관도 23일 유엔연설에서 처음으로 독일의 상임이사국 지위를 요구하는 발언을 했다.
상임이사국 지위를 공개적으로 요구치 않았던 독일의 이같은 태도는 통일 2주년을 맞아 자신의 경제력에 걸맞은 국제정치상의 역할 모색으로 분석되고 있다.
유엔안보리는 15개국으로 구성돼 이 가운데 상임이사국은 2차대전 전승국인 미·영·불·로·중 5개국이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10석은 임기 2년의 비상임으로 각 대륙에서 2개국씩 윤번으로 선출되고 있다.
일·독의 이같은 주장에 앞서 개도국들은 거부권을 행사하는 상임이사국이 서방 강대국중심으로 구성되어 국제문제 논의와 결정에서 개도국들이 소외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개도국이 참여하는 안보리 개편을 주장해 왔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브라질안으로 지난주 셀소 라페르외무장관은 일·독 두라나와 함께 개도국 가운데 대국인 브라질·인도·이집트·나이지리아 등 4개국에 거부권이 없는 상임이사국 지위를 주자고 제안한바 있다.
이밖에 비상임 이사국수를 늘리고 상임이사국들의 거부권도 없애 다수결제로 바꾸자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물론 이같은 제안들에 대해 기존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일·독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고 말하면서도 이 조치가 유엔과 안보리 구조의 전체적인 변혁을 요구하는 움직임으로 발전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특히 개도국의 진출로 이사국 수가 늘어날 경우 안보리가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지는 것을 문제로 지적한다.
또 독일과 관련해선 EC(유럽공동체)가 통합할 경우 기존 상임이사국인 영국·프랑스와 함께 유럽의 상임이사국 조정문제가 복잡해지게 된다.
이 때문에 영·불은 안보리 상임위 개편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유엔이 2차대전의 산물임을 강조하며 일본과 독일의 원죄까지 거론하고 있다.
일본은 경제력으로 상임이사국 자리를 차지하길 원하고 있으나 전쟁피해보상문제를 피해국들과 매듭짓지 못했고 독일과 달리 과거를 반성하고 정리하는 태도에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유엔탄생 요인을 제공한 나라들이 상황이 바뀌어 돈만으로 국제평화기구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위를 차지하려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국가들도 많다.
일본과 독일의 상임이사국 진출이 가져올 유엔의 변화와 함께 그들이 역사에 저지른 과오에 대한 자성 등도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개도국이 상임이사국이 될 경우 아르헨티나·터키 등 경쟁국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따라서 일본 등에 요구하는 유엔 안보리의 개편은 쉽게 결말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뉴욕=박준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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