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평화정착 기틀 세웠다/한­중 정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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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반도 안정 중국 국익과 합치/일 견제 한마음… 길게는 경쟁국
8·24한중수교에 이은 노태우대통령의 중국 공식방문은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40여년간의 적대적 및 불편한 관계가 이로써 공식적으로 청산되고 화평과 우호·협력을 통한 관계증진의 기틀을 확고하게 마련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28일 노 대통령과 양상곤 중국국가주석과의 양국정상회담은 이같은 양자관계뿐 아니라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평화체제구축의 기반을 다지는데 크게 기여했다.
양국정상은 이날 양국간의 긴밀한 협조관계를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정착에 노력키로 의견을 모았다. 이는 양국이 북한을 개방적인 평화체제로 이끌어내는데 협력하고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공동대처한다는 함축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이 이날 우리측의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지지키로 확인한 점은 그 좋은 예라 하겠다. 이는 남북관계 진전의 최대장애요인인 상호핵사찰 조기실시의 기대를 높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도 중국이 불안해하고 있는 점을 해소하는 우리측 입장을 적시함으로써 중국측에 화답했다.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가 중국의 개방·개혁정책 추진 및 동북아세력균형 등 그들의 국익과 합치되며 우리의 흡수통일 불원원칙을 분명히 한 점이 그것이다.
노 대통령은 더 나아가 북한의 국제적 고립화를 바라지 않음을 물론 북한 핵문제가 완전해결될 경우 북한과 미국·일본·EC 등과의 수교에 협조하고 대북 경협제공 용의 등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런 것들이 양국의 공동이익을 위해 긴요하다고 강조해 중국측의 공감을 자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정상은 또 양국간의 실질관계증진에 기반이 될 사항에 합의했으나 의견을 좁혔다.
경제·통상관계 증진을 위해 기존의 민간 무역협정과 투자보장협정을 정부간 협정으로 대체하고 과학기술협력협정·경제공동위 설치협정 등을 체결하는 외에 양국 은행지점 교환확대 설치 등도 조기추진키로 했다.
노 대통령은 중국의 8차 5개년계획(91∼95년) 참여 요청에 대해 적극 검토의사를 밝혔고 양 주석도 만족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한중양국은 이번 회담에서 중공군의 6·25참전 등 거사에 대한 청산을 매끄럽게하지 못해 큰 아쉬움을 남겼다.
또 ▲분아별 각료회담 정례화 ▲이중 과세방지협정 ▲항공 및 해운협정체결 문제를 놓고 양국간의 이해대립을 조정하는데 진통을 겪어 앞으로의 과제로 남겼다.
양국간 이해가 날카롭게 부딪치고 있는 사안은 대륙붕경계·해양석유개발·어업협력문제 등 산적해 있다.
실질관계의 축적 및 호혜적 토대에서 양국이 계속 논의해 해결점을 찾아야할 사안들이다.
양국간의 관계증진에도 한중양국이 장기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도 많다. 지금은 한중양국이 상호보완적 입장에서 일정영역의 경제협력을 순조롭게 해나갈 수 있지만 멀리보면 양국은 경쟁적 관계로 돌아설 전망이다.
지금은 한국의 기술·자본,중국의 값싼 노동력·자원 등의 상호보완적 측면이 강조되고 있으나 중국의 경제발전템포가 빨라져 머지않아 경쟁적 성격으로 돌아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측이 이중과세방지협정 등에 난색을 표하고 한국기업의 자동차산업 진출에 소극적인 것 등은 이런 측면을 시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관계전문가들이 대중관계에서 장기적으로 대국을 보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한결같이 진단하는 배경이다.
몇몇 현안과 장기과제들이 이번에 해결되지 않았다고 해서 이번 정상회담이 과소평가되어서는 안된다는게 정부측 입장이다.
근 반세기의 적대관계에서 벗어나 안보협력문제까지 고려될 정도로 양국관계가 진전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중국은 특히 체제붕괴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북한을 의식하고 있고 우리도 그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한중양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간 우호·협력은 물론 동북아질서의 구축을 위한 진정한 시험대에 들어섰다고 관측된다.<북경=김현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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