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블록화(탈냉전시대 새 지역갈등:5·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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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EC」이후 세계곳곳 통합바람/아랍·아주 등 개도국들 발동동
세계가 민족주의의 물결로 새로운 분쟁과 갈등의 몸살을 앓고 있는 와중에 세계경제는 급속한 지역통합의 길을 걷고 있다.
세계경제의 지역단위로의 재편은 소련 붕괴로 이념대결이 종식되기전부터 서유럽국가들에 의해 주도되어 세계경제시장의 재편에 불씨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프랑스 등 서유럽국가들은 57년 유럽의 경제적인 힘을 강화하기 위해 유럽공동체를 결성,92년말까지 모든 무역장벽을 제거하고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단일경제시장을 형성키로 합의했다.
서유럽의 이같은 움직임은 초기엔 냉전구조아래서 강력한 유럽이 공산주의를 견제하는데 도움이 되는 등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3억인구의 단일시장 창설이 92년말 시한을 앞두고 현실로 다가오고 국가간 무역갈등이 고조되어 그것이 강력한 보호주의적 성격을 띠자 이웃나라들과의 지역경제시장 창설움직임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미국·캐나다·멕시코가 EC보다 더큰 3억6천만인구의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키로 합의한 것은 그 대표적인 것이다.
미국은 이밖에 중미 16개국과 영어권의 카리브해 17개국과도 자유무역을 추진하고 있다.
또 멕시코를 축으로 중미 5개국과 남미 6개국이 별도의 자유무역지대를 설치하기 위한 협상이 진행중이거나 이미 합의된 상태.
이와는 별도로 브라질을 중심,남미 4개국도 독자적인 자유무역체제를 추진하고 있다.
미주대륙에서의 이같은 여러갈래의 움직임은 거대한 미주대륙이 언젠가 하나의 단일시장으로 묶여질 가능성을 크게 해주며 멕시코는 이를 위해 그 중추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유럽과 미주대륙의 움직임에 대항키 위해 일본은 아시아경제권의 창설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은 EC단일시장에 대비해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국가들에 대규모 투자를 해왔는데 거대시장인 미국을 의식해 아시아 단일시장 창설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세계시장이 이같이 지역적으로 급속히 재편될 기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25일에는 동유럽의 폴란드·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 4개국도 동유럽자유무역지대 창설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져 지역경제블록화 추세에 동참하고 있다.
세계시장이 이처럼 지역적으로 분할될 경우 최대의 피해를 보는 것은 아랍. 아프리카지역의 개도국과 빈민국들이 외교력 부족과 지역내 갈등으로 큰 위기에 대처할 여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세계경제시장이 지역적으로 재편될 경우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가져와 국가간 빈부차가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지역을 중심한 세계경제시장의 재편은 그러나 최근 EC의 통화위기가 보여주듯 새로운 민족주의의 희생이 될 수도 있다.
독일이 통일비용을 이유로 유럽전체의 이익보다는 자국이익 우선정책으로 통합에 위기를 제공한 것은 그 뿌리에 독일민족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일본의 과거 죄악때문에 더 강화된 아시아 여러 나라의 민족주의는 이 지역 단일시장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만약 유럽단일시장이 새로운 민족주의 때문에 실패할 경우 미주대륙의 자유무역 움직임도 후퇴할 가능성이 있다.
중남미국가들은 경제의 블록화추세에 대응키 위해 경제대국인 미국을 필요로 하고 있지만 과거 역사때문에 국민들의 대미정서가 호의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 등장하고 있는 민족주의 물결과 경제시장의 지역적 통합이라는 서로 상반되면서도 병행되고 있는 추세가 어떤 상호작용을 할지 주목된다.<뉴욕=박준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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