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위기를기회로] 예천 농부 남기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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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호·정옥례씨 부부가 인터넷으로 주문받은 농산물을 전국의 단골 고객에게 택배로 보내기 위해 포장하고 있다. [사진=황선윤 기자]

농사 짓는 농민에게는 어떤 작물을 생산하느냐 못지않게 판로 개척이 중요하다. 열심히 농사 지었는데 제대로 팔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돼 농촌에서는 걱정을 떨치지 못하지만 경북 예천군 개포면 가곡1리의 남기호(48).정옥례(42)씨 부부는 '인터넷 온라인 시장'을 개척해 FTA 시대가 오히려 기대된다.

지난달 31일 이들은 농산물이 든 택배 박스를 포장하느라 바삐 손길을 놀렸다.

"어휴, 택배 싸느라 점심도 못 먹었네. 서두르지 않으면 택배 시간 놓치겠어요. "

부부가 포장을 끝내자 개포면 우체국 강신석(57) 사무장의 차가 정문 앞에 멈춰 섰다. 강씨는 "오늘도 보낼 물건이 많다"고 부부를 재촉해 차 뒷좌석과 트렁크에 상자를 싣고는 "장사 잘한다"는 칭찬을 남기고 바쁘게 떠났다.

이날 부부는 온라인 주문을 받아 토마토.쌀.청국장.된장 등을 단골 고객에게 보냈다.

남씨 부부는 지난해 논 1만2000평, 밭 3000평에서 무농약 또는 유기농법으로 수확한 농산물 전량을 인터넷 홈페이지 '쌀아지매'(www.fulender.com)를 통해 팔고 있다. 온라인 전자상거래로 이들은 지난해 7000여만원의 매출에 인건비를 뺀 순수익만 5000만원을 올렸다.

◆온라인 판로를 개척하다=1984년부터 농사를 지어온 남씨는 남처럼 유통상에게 농산물을 넘기는 평범한 농민이었다. 하지만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기가 쉽지 않았다.

"고생한 만큼 수입을 못 올려 억울했어요. 고민 끝에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농산물을 팔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98년 버스로 왕복 3시간 걸리는 안동에서 인터넷 교육을 한다는 정보를 얻었다. 바로 인터넷 공부에 매달렸다.

정보화기기운영 자격증을 따는 등 5년간 찬찬히 준비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정씨는 2003년 8월 직접 인터넷 홈페이지 '쌀아지매'를 만들어 개설했다.

◆"인터넷 거래는 신뢰가 생명"=처음에는 무척 힘들었다. 2003년 온라인 매출은 100만원에 그쳤다. 인터넷 방문자가 거의 없었다.

"오프라인에서 팔 때보다 매출이 떨어졌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죠. 미흡했던 홍보를 강화하기 위해 발로 뛰었죠."

부부는 홈페이지 홍보를 위해 30대 여성이 주축인 카페.블로그를 공략했다. 맛있는 밥을 짓거나 반찬 만드는 법 등의 글을 남기며 쌀아지매를 홍보했다. 쌀을 주문받으면 갓 수확한 무.배추.감자 등을 '맛보기'로 함께 보내주며 신뢰를 쌓았다. 주문을 받으면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정해진 날짜에 보내는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영농일지를 사이트에 올려 소비자에게 믿음을 주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단골만 700명이 넘었다. 소비자들은 소매상에게서 구입할 때보다 싼값에 품질좋은 농산물을 구입해 만족했다. 올해만 연매출 8000만원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

예천=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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