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황세희의몸&마음] 거짓말은 죄일까 병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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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 일 절대 없습니다."

한여름 태양빛이 산천의 녹음(綠陰)마저 투명하게 비추는 6월에도 유명 인사들의 거짓말 향연은 계속될 것인가. 지난 한 달간 국민은 경찰청 간부.대기업 회장.정치인이 곧 진실이 드러날 상황에서도 떳떳하게(?) 거짓말을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거침없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거짓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진실을 중시하던 전통사회에서도 장사꾼의 '밑진다'는 타령, '시집 안 간다'는 노처녀의 항변,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노인의 푸념은 통용됐다. 피해자 없이 그저 말하는 이의 자존심을 위한 변명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선의의 거짓말(white lie)'은 옹호되기도 한다. 예컨대 유대인의 정신문화를 담은 '탈무드'에서도 친구가 이미 구입한 물건에 대해 평가할 때 무조건 "좋다"고 대답하고, 결혼한 친구에게 "부인이 미인이니, 행복하게 살라"는 덕담은 허용되는 거짓말이다.

반면 의도적으로, 반복해서, 또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거짓말은 도덕적으로는 '죄(罪)'며 , 정신의학적으로는 치료가 필요한 '병(病)'에 해당한다. 거짓말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이나 처벌을 회피하고, 명예를 지키려는 목적으로 이용되는데 정신분석학적으로는 초자아(超自我 )가 무너진 상태다.

인간의 내면엔 욕구를 추구하는 본능, 이를 견제하고 도덕.양심.윤리 등을 지키려는 초자아, 현실에 대한 분별력을 담당하는 자아가 상존한다. 건강한 정신이란 이 세 요소가 균형을 이뤘을 때이며, 본능을 위해 도덕과 양심을 저버린 거짓말쟁이는 당연히 정신 건강이 병든 상태다.

거리낌없이 반복해서 거짓말을 하는 대표적인 정신질환은 '반사회적 인격장애'다. 이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하는데, 죄의식이 없다. 결국엔 사기범이 되기 쉽다. 남들의 관심을 끌고자 과장 표현을 일삼는 히스테리성 인격장애, 변덕과 감정 기복이 심한 경계성 인격장애, 자아 도취증에 사로잡힌 자기애적 인격장애 등도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거짓말을 활용한다. 이들은 거짓말에 성공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실패하면 우울해 하는 게 특징이다.

어린시절 훈육 부재도 거짓말쟁이를 만든다. 인간의 거짓말은 말을 배우면서 시작된다. 아이는 자신의 궁금증과 상상력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거짓말을 하는데 이때 부모가 무심코 지나치면 '거짓말은 해도 되는구나'란 가치관이 형성된다. 아무리 어려도 거짓말은 나쁜 행위임을 반복 설명해 줘야 하는 이유다.

의식적으로 인정하기 힘든 일을 무의식적으로 부정해 고통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거짓말이 사용되기도 한다. 싫은 일을 '잊어버려 못했다'고 생각하면서 변명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어떤 경우건, 일단 당당하고 상습적인 거짓말은 2년 이상 정신치료로 본인의 성격적인 문제와 원인을 찾아 고쳐야 한다.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도 이 점을 인식하고 치료를 위한 도움을 주자.

황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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