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인가/오홍근(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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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근래들어 일부 술좌석에서 건배를 할때 외친다는 구호 두가지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위하여­위하여』나 『지화자­좋다』 등 흔히 우리귀에 익은 것들과는 좀 생소한 『우리가­남이가』와 『우리는­남이다』고 하는 구호가 들리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다.
당사자들은 부지불식간에 덩달아 외쳐보는지는 몰라도 이들 구호가 아직 만연되지는 않았으나 상당한 전염성이 예상된다 해서 세간의 주목을 받는 듯하다.
○PK들이 즐긴다는데
부산에서 시작됐다는 『우리가­남이가』는 이땅의 한세월을 주름잡던 이른바 TK(대구·경북)에 이어 새로운 가능성 세력으로 떠올랐다는 일부 PK(부산·경남)인사들의 구호이고,뒤이어 나온 『우리는­남이다』는 주로 중부권 일부 인사들의 외침이라고 한다.
술집에 모인 일단의 PK인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 술잔을 들고 『우리가!』라고 선창을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술잔을 위로 들어올리면서 『남이가!』라고 일제히 화답하고는 잔을 쭉 들이킨다는 것이다. 『남이가』는 다 알다시피 『남인가』란 말의 경상도 사투리다. 그러니까 『우리가 남인가』란 말이 된다. 참으로 묘한 느낌을 주는 말이다.
세간의 흐름에 따라 물어 더듬어가보면 그 구호속에는 『우리는 PK로서 우리끼리는 서로 돌보고 이끌어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바로 그 뜻이 주목거리라는 이야기다. 어찌보면 이 구호는 『이 국가적 난국은 다른 사람아닌 우리 PK가 솔선해 헤쳐가야 하고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부축해 줌으로써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게해야 한다』는 아름다운 뜻으로 비쳐질 수도 있겠으나 문제는 그 구호를 전해들으면 별로 그렇게 감지되어지지 않는다는데 있는 것 같다.
○엇가는 “남이다” 구호
그 구호의 대열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 가운데는 『그 구호야말로 PK들끼리의 독식을 다짐하는 선서나 다름없다』고 혹평하는 경우까지 있는 것을 보면 문제가 그리 간단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가­남이가』이후에 등장했다는 『우리가­남이다』란 외침속에 담긴 뜻에도 『우리가­남이가』에 못지않은 심각성이 있어 보인다.
『너희들 원하는대로 우리는 너희와 남이다. 그러나 너희 뜻대로 되나보자』는 뜻이 숨은듯도 하고 『너희들끼리 잘먹고 잘 살아라』는 식의 자포자기와 원망의 뜻을 함축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모든 PK인사나 모든 중부권사람들이 그렇게 외치는 것도 아니고 한낱 술좌석에서 소리쳐보는 구호에 불과하다고 봐버리면 그뿐일 수도 있다. 또 일부 호사가들의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해 버리면 그야말로 아무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구호들이 설사 이제 유행의 태동기에 자리잡고 있을뿐이라 해도 하필이면 정권교체기라는 이 미묘한 시기에 얼굴을 내민 점도 심상치 않고,또 설혹 그같은 구호를 외치지는 않는다 해도 그 구호들에 공감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리란 점도 예삿일처럼 보여지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관가에서는 어느새 PK라는 말이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요즘이다. 『어느 부처의 인사에서 전례없이 TK 대신 PK가 득세했다』는 식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흐름이 되어 보편적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우리가­남이가』니 『우리는­남이다』하는 구호들이 바로 그같은 현실과 흐름을 같이 하면서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물론 어느 특정인이 차기 집권자로 내정(?)된 것도 아니고 그저 단순히 가능성만을 놓고 오가는 이야기라도 그렇다.
○지역감정 유발 가능성
두개의 구호나 관가에서 보편화된 인식이 밑바닥에 깔고 있는 것은 특정지역 집단독식주의에 대한 시비와 지역감정이다. 그러나 지역감정만은 안된다. 용서해서도,용서받을 생각을 해서도 안된다.
우리는 이른바 TK인사들이 득세하던 시절,PK인사들도 『너무 심하다』고 불평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 또 다른 그런 상황이 벌어지려는 것을 우려하는 판국이 되었다.
흔한 말로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TK는 뭐고 PK는 무엇인가. 참으로 우리가 남인가.<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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