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게임에서 이기는 방법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2호 25면

쇼핑이 게임이라면 목적은 필요한 걸 획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쇼핑의 달인의 할아버지’라고 해도 상점 안에 들어서기 훨씬 전부터, 그의 행방이 연구ㆍ분석되었다는 건 모를 것이다. 상점 디자이너들은 애당초 그의 시선이 처음 어디에 머물 것이며, 어느 타이밍에 물건을 만져볼지를 알고 동선의 어느 지점쯤 강력한 매력을 발산하는 상품을 둘지 옛날에 다 파악해둔 상태다.

이충걸의 네버 엔딩 스타일

이를테면 기본적인 아이템이 대략 매장 뒤쪽에 배치돼 있는 건 상점의 전략이다. 고객의 관심을 되도록 흩어놓아 세상엔 필요하지 않아도 눈 돌아가는 상품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하려는 것이다.

첫 번째 허들은 매장 입구라는 완충지역이다. 입구 주변의 반경 몇 미터에 배치된, 이번 시즌 컬러로 반짝거리는 스웨터는 예산과 규모를 가지고 목표를 향해 가는 고객을 저지하는, 말 그대로의 장벽이다. 그러므로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진군하기 위해서는 지갑을 더 단단히 쥐어야 한다.

두 번째 허들은 남자가 맞닥뜨린 남성용 코너다. 여자들은 남성용 제품이 보이건 말건 제 할 일을 다 하지만, 남자들은 여자 옷과 마주치면 갑자기 경직돼 못 올 데를 왔다고 생각한다. 달아나버리지나 않는 게 다행이다. 그러니 남성 매장에 도착해 고향에 온 듯 활짝 반색하는 남자 옆에 있다간 뭐라도 안 사주곤 못 배길 것이다.

당신은 이제 십중팔구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세상이 오른손잡이 중심으로 펼쳐져 있으니, 숍 매니저가 빨리 처분하고 싶은 옷도 대체로 오른쪽에 진열되어 있을 수밖에. 설사 이 지역에서 살아남아도 매장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이 기다린다. 행렬을 이룬 신상품의 트렌드 지역이다. 운이 좋아 여기서도 버틴 당신에겐 다른 공습이 남았다. “날 봐, 날 느껴봐, 날 만져봐”라고 외치는 디스플레이. 쓰다듬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는 테이블. 병아리보다 더 보송보송한 캐시미어 스웨터(우리는 촉감으로 쇼핑하는 게 아닐까)…. 한 번 손에 집어들었다면 다시는 내려놓을 수 없다.

그때 함정이 다시 추가된다. 디자인은 같지만 더 선명한 파란색과 탄복스러운 카키색 스웨터. 그때는 하나만 살 수 없다. 그곳에서 살아날 길은, 무너지는 동굴이기라도 한 것처럼, 스웨터를 그 자리에 두고 서둘러 빠져나와야 한다. 내일이면 이성을 되찾아 돈을 쓸 여력도 없으며, 스웨터 없는 삶도 의미 있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이제 마지막 허들이 남았다. 계산대 주변에 널린, 저항할 수 없는 충동구매로 이끄는 작은 아이템들 말이다. 어느 아이템이라도 당신을 은하수의 멋진 여행으로 데려갈 수 있다. 그러니 예쁜 양말이나 깃털로 장식된 머리띠, 체크 목도리, 싸구려 보석들을 보면 눈을 감고 주기도문을 외워야 한다. 잘 떠오르지 않으면 시편도 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지갑을 열려는 충동을 없애주시리로다….’

쇼핑 게임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은 눈과 마음은 열되 지갑만은 꽉 움켜쥐는 것뿐이다. 때로 안구가 튀어나오도록 출중한 코트를 봤을 땐 잠시 호흡을 고르고 시간을 가져야 한다. 집에 돌아와서도 일주일 내내 눈에 어른거린다면 그때는 지갑을 열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건 상점에서 지갑이 다 털렸는데도 다음날 또 쇼핑하며 살아가리라는 사실이다.  

---
‘GQ KOREA’의 편집장 이충걸씨는 에세이집『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슬픔의 냄새』등을 펴내고 박정자의 모노 드라마 ‘11월의 왈츠’를 쓴 전방위 문화인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