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권력서열 6위 황쥐 부총리 사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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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02면

1994년 당시 상하이 시장으로 재직 중이던 황쥐(오른쪽)가 홍콩 갑부 리카싱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리카싱의 청쿵 그룹이 상하이 푸둥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한 데 대한 감사의 표시다. 사진=김명호 제공

중국 권력서열 6위인 황쥐(黃菊) 국무원 부총리가 2일 새벽 베이징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 69세. 그가 맡아온 금융ㆍ재정ㆍ세무 등의 업무는 우이(吳儀) 부총리가 맡을 전망이다.

상하이방 몰락 결정타

황쥐의 사망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세력과 장쩌민(江澤民)이 이끄는 상하이방(上海幇) 간의 오랜 권력 투쟁에서 상하이방 몰락의 한 획을 긋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1938년 저장(浙江)성 태생인 황쥐는 상하이 부시장으로 재직하던 87년 상하이 당서기로 부임한 장쩌민과 돈독한 관계를 맺으며 상하이방의 거목으로 성장했다. 장이 총서기가 돼 베이징으로 떠난 뒤 주룽지(朱鎔基) 밑에서 일했으나 “주룽지 동지가 내게 잉크 없는 만년필을 줬다”는 불만을 토로할 정도로 장을 믿고 행세해 왔다.

승승장구하던 상하이방에 조종이 울리기 시작한 것은 2002년 16차 당 대회를 통해 총서기 자리가 후진타오에게 넘어가면서다. 당시 장쩌민은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중 5명을 상하이방 인사로 채웠다. 권력서열 2위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상임위원장, 4위 자칭린(賈慶林) 정협 주석, 5위 쩡칭훙(曾慶紅) 국가 부주석, 6위 황쥐, 8위 리창춘(李長春) 상무위원 등. 쩡칭훙을 중심으로 좌우로 포진해 후진타오를 압박하는 격이었다.

후진타오 세력이 뚫어야 할 상하이방 중 당초 가장 약한 상대로 생각된 인물은 자칭린이었다. 99년 말 샤먼(廈門) 밀수사건이 터졌을 때 자의 친인척 연루설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캐나다로 도피한 주범 라이창싱(賴昌星)이 후 주석이 권력을 잡은 뒤에도 끝내 중국으로 소환되지 않으면서 상하이방은 첫 고비를 넘겼다. 이후 후 주석 측은 상하이 부동산 재벌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상하이 최고 갑부 저우정이(周正毅) 등 권력과 결탁한 이들이 잇따라 체포됐다. 이른바 2003년 상하이 금융 스캔들로 타깃은 황쥐였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장쩌민이 직접 나섰다. 상하이 문제는 상하이를 가장 잘 아는 황쥐에게 맡기자고 주장한 것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셈으로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상하이방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2004년 4월 천량위(陳良宇) 상하이 당서기가 후진타오-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경기과열 억제책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경기과열 억제를 빌미로 상하이 발전을 막겠다는 게 아니냐는 취지였다. 천은 탁자를 치며 말할 정도로 당중앙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후문이다. 천은 황쥐가 발탁한 인물이다. 황쥐 또한 덩샤오핑(鄧小平)의 ‘먼저 부자가 되자’는 선부론(先富論)을 이어가자며, 후-원이 추진하는 ‘모두 부자가 되자’는 공동부유론에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이 같은 세 다툼은 2004년 9월 장쩌민이 군사위 주석을 후진타오에게 넘기며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쩡칭훙이 후진타오 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2005년 말 마침내 천량위에 대한 부패 조사가 시작됐고, 2006년 초 황쥐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췌장암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그해 전인대 행사에 황쥐는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9월 천량위가 해직됐고, 천량위를 몰락시킨 사회보장기금 남용 부패안에 황쥐의 부인과 동생이 연루됐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나 황쥐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건강이 악화돼 대항 능력을 상실했고, 정치국 상무

위원 황쥐를 조사할 경우 공산당의 위상 추락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황쥐는 지난 3월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전인대에 참석한 게 마지막 공식 활동이었다. 지난달 초엔 사망설이 돌았다. 다른 고위 관리 사망을 황쥐가 죽은 것으로 오인했던 것이다. 황쥐 사망으로 장쩌민을 중심으로 80년대 말부터 형성됐던 상하이방은 역사의 무대에서 급격히 사라지게 됐다. 칭화(淸華)대학을 졸업한 황쥐는 63년 상하이 공장 노동자로 시작해 2002년 정치국 상무위원이 돼 베이징으로 떠날 때 까지 40년 동안 상하이를 위해 일했다. 중국은 그런 황쥐에게 당중앙과 전인대, 국무원, 정협 공동의 이름으로 부고를 발표했다. 죽은 자에 대한 마지막 예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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