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여 「중립내각」싸고 동상이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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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 “여야없이 조각하자”공세/민자 “선거관리에만 국한 할 것”
노태우대통령이 9·18선언에서 제시한 중립내각구성을 둘러싸고 민자·민주·국민당은 동상이몽속에 정국주도권을 잡으려고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김대중민주대표의 23일 내각총사퇴 요구는 간단히 말하면 그가 구상하는 중립내각의 틀을 제시하면서 정국주도권을 확고하게 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날 당무회의에서 『철저한 중립과 완벽한 공명선거를 보장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지 않으면 9·18선언의 국민기대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며 새조각을 주장했다.
그는 총리와 안기부장,내무·법무·공보처장관의 교체에다 한발 더 나아가 검찰총장·경찰총장·국세청장까지 자진사퇴나 경질을 들고 나왔다.
이런 기조에서 김 대표가 당적을 가진 장·차관,별정직 공무원,국영기업체 임직원의 당적이탈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대신 경제각료는 내각총사퇴와 당적이탈후 다시 임명할 수 있다며 『이는 어려운 경제실정과 정책의 일관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했다. 자기임의대로 대통령의 각료임면권과 남의 당 당적에까지 기준을 제시하고 요구한 것이다.
다시 말해 최각규부총리,강현욱농림수산,이연택노동장관에 대해선 민자당만 뜨면 새로 임명해도 상관않겠다는 것인데 이는 내각총사퇴주장이 정치공세에만 치중한다는 나쁜 인상을 줄 우려를 어느 정도 불식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전날까지만해도 중립내각구성에 대해 원론적인 입장만 표시했던 김 대표가 서두르는데는 『당적없는 대통령,여야없는 정치상황을 하루빨리 정착시키겠다는 의사』라고 주변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이같은 공세는 김영삼총재의 건의를 받아들여 개각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의중을 견제해 중립내각이 자신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부각하기 위한 전략적 측면도 강하다.
또 노 대통령의 조치를 민자당이 유리하게 해석,써먹으려는 것을 막겠다는 것으로 노 대통령,청와대비서진,장·차관 등 정부쪽과 민자당과의 「결별」을 하루빨리 뿌리박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여기에는 민자당쪽에서 9·18조치에 상관없이 청와대와 물밑교류설이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빠른 속도로 분위기가 잡혀가는 것을 의식해 중립내각문제로 정국을 끌고 가겠다는 계산이 담겨있다.
당내 일각에서 9·18선언의 경계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고려했다는 후문이다.
이철총무가 김 대표와 상의없이 꺼냈다가 야단맞은 국회의장의 당적이탈도 김 대표의 구상을 지레 짐작해서 내놓은 것이다.
김 대표는 28일 김영삼총재와 만나 중립내각구성에 대해 협의할 것이나 대충 입장표명에만 그치겠다는 생각이며 구체적인 구상은 10월초 노 대통령과 함께 만나는 4자회담에서 꺼내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3자회담에서 어느 정도 얘기를 끝내고 만나자는 것이어서 김 대표 생각대로 끌고 나가기에는 쉽지 않다.
○…민자당은 김대중대표의 내각총사퇴 요구에 대해 『정권이양기에 국정을 마비시키자는 발상』이라며 일제히 반박했다.
김영구사무총장은 『노태우대통령의 뜻은 중립내각이지 거국내각 또는 연립내각을 구성하자는 것이 아니다』며 『중립내각 구성 대상도 선거관련부처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한계를 분명히했다.
민자당은 선거관리 중립내각을 구성하더라도 3당은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뿐 최종결정권은 어디까지나 노 대통령에게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더구나 대통령이 당적을 이탈한 이상 정부의 선거중립성은 보장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민자당수뇌부는 민주당의 내각총사퇴 요구가 내각구성에서 일정지분을 얻어내는 한편,노 대통령과 김영삼총재의 「내연」관계에 대응하기 위해 미리 자락을 깔아두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민자당은 노 대통령의 탈당은 『제2의 6·29선언』『야당의 지방자치단체장선거 연내실시 주장을 희석시키기 위한 고육지책』 등으로 미화하고 있지만 내심으로는 『정당정치하에서 무소속 대통령이라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는 불만을 잔뜩 갖고 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탈당도 선거공정성 확보를 위해 「부득이」 떠난 것으로 민자당과의 「절연」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민자당은 비록 여당의 자격은 상실했지만 앞으로 국회운영 등에 있어서 다른 때보다 더욱 정부측에 협조,정국운영에 책임을 지는 원내 제1당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방침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노 대통령의 탈당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무정부상태가 초래될 우려가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무너진 당정가교를 재구축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김 총재는 조만간 노 대통령의 탈당이후 당내동요가 진정됐음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정국운영 구상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검토하고 있다.
민자당은 이와 함께 중립내각은 선거에만 국한된 것이며 따라서 당정협의도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어 앞으로 민주·국민당과 끊임없는 논란이 예상된다.<박보균·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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