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만 먹는' 지역 축제 없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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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 2005년 6월 초 한라산 계곡물과 바닷물이 만나 은어가 몰려온다는 서귀포시 강정천에서는 '제4회 강정 은어축제'가 열렸다. 제주도와 시는 이 축제에 2500만원을 지원했다.

하지만 정작 축제에 은어는 구경도 할 수 없었다. 관광객은 발길을 돌렸고 100여 명의 상인만 몰려 주변은 시장판으로 변했다. 노상 방뇨를 하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그러자 주민들이 "축제 때문에 동네 이미지만 나빠진다"며 반발했다. 그래서 지난해는 일단 축제를 열지 않았다. 서귀포 시는 올해 정식 심의를 거쳐 은어축제 지원 예산을 삭감해 축제를 없앴다.

# 포항 해변에서는 매년 6월에서 12월 사이에 해병문화축제.해변축제.과메기축제 등이 열린다. 그런데 프로그램 내용은 비슷하다. 무대와 조명 장치를 설치하고 장기자랑.노래자랑을 연다. 무대 옆에는 해산물 중심의 술판이 벌어진다. 축제별 예산은 불과 5000만원인데 이 중 3000만원은 무대와 조명 시설 설치에 들어간다. 이러니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생각할 수도 없다. 관광객은 없고 축제는 먹고 마시는 술판으로 변한다. 포항시는 올해 이런 축제를 하나로 통합하거나 폐지하기로 했다.

경쟁력 없는 지역 축제가 퇴출당하고 있다.

한때 지역 축제가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나 전국이 '축제 공화국'이란 얘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지역 축제가 특색 없는 프로그램으로 관광객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데다 예산 낭비라는 주민들의 반발만 커지자 지자체들이 올 들어 지역 축제를 통폐합하고 있다.

◆ "10여 년 새 763개 축제 늘어"=지역 축제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것은 1995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부터.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현재 전국 각지에서 열린 지역 축제는 1176개였다. 이 중 64.8%인 763개가 96년 이후 시작됐다.

모두 지역 주민의 애향심을 고취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실제는 선거로 뽑힌 단체장이 치적을 쌓기 위해 축제를 남발했다. 축제를 급조하다 보니 기획.홍보 등은 허술하기 짝이 없어 축제가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고 동네 잔치 수준에 그치는 게 태반이었다.

그런데도 축제에 쏟아붓는 예산은 엄청나다. 매년 146개 축제가 열리는 경기도는 총 300여억원을, 41개의 축제가 진행되는 전북도는 70여억원을 쓴다. 경기도 관계자는 "전국적으로는 시.군.구뿐 아니라 읍.면 단위로도 축제가 열려 정확한 산출은 어렵지만 총비용은 2000억~3000억원대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 유사 축제 통폐합=대전시는 83년부터 매년 열던 한밭문화제를 올해 없애기로 했다. 매년 4억원의 예산을 들이지만 프로그램은 20여 년간 농악경연.민속놀이 등 그대로였다.

도내 23개 시.군.구에서 연간 115개의 축제가 열리는 경북도는 아예 시.군별로 축제 수를 연간 2개로 제한하는 축제 총량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지역 축제를 구조조정하는 제주도는 올해 도내 축제 예산을 지난해보다 2억7000만원 줄이는 등 군살빼기에 나섰다.

대전문화연대 안여종(39) 사무국장은 "관광객도 없고, 지역 발전도 기대할 수 없는 축제에 쓰는 많은 예산을 생산이나 복지 부문에 사용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경기대 관광.이벤트학과 김창수 교수는 "지자체마다 축제 육성위원회 등을 구성, 사전심의와 평가제를 도입해 축제의 내실화를 기해야 한다"고 했다.

정영진.황선윤 기자

◆5월 31일자 10면 '예산만 먹는 지역축제 없앤다' 기사의 표와 관련, 익산지역 3대 축제추진위원회는 축제를 폐지하지 않고 서동축제.국화축제 등을 통합하고 보석축제를 계속 열기로 했다고 알려와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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