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구인과 정치수준/김종혁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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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민주당사에서 이뤄진 경찰의 한준수 전 연기군수 강제구인과정을 지켜본 기자의 심정은 한마디로 『우리 정치의 수준은 과연 이정도밖에 될 수 없는가』이다.
제1야당 당사를 가득 메운 경찰,당원·경찰간의 욕설과 주먹다짐,부서진 문짝,실신한 의원들….
애당초 우리정치에 대해 그리 고상한 기대는 안해온 국민들도 TV를 통해 시장바닥보다도 더한 난장판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을 것이다.
이같은 사태가 벌어진데는 민주당도 분명 일정부분 책임이 있을 것이다. 어차피 한 전 군수의 양심선언으로 관권개입이 드러난 이상 당사자인 한 전 군수가 떳떳이 출두해 진상을 증언하고 만일 또다른 왜곡이 저질러진다면 그때 다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보다 당당한 태도다.
『민주당이 사건의 진상규명보다는 시간을 끌면서 최대한 정치적으로 이용해 보겠다는 계산만을 앞세운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하는 국민들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정치적 계산이 무엇이었든 간에 한 전 군수의 양심선언에 대해 가장 반성하고 국민앞에 사죄해야 할쪽은 분명 정부·여당이다.
안기부·경찰·검찰·행정관료가 모여 「민자당후보 당선을 위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고 도지사가 공문을 보내 여당후보를 당선시키라고 지시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이상 정부·여당은 입이 열개라도 국민앞에 할 말이 없다.
「진상조사를 위해서는 한 전 군수가 출두해야 하고 일단 구인장이 발부된 이상 야당당사라 해서 성역은 아니다」는 법 지상주의를 앞세우지만 만일 정부·여당이 먼저 관권개입의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애초부터 양심선언따위가 나왔을 턱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한 전 군수의 양심선언건은 처음부터 정치적인 문제였고 그 해결에 있어서도 형식법리보다는 내용과 실질에서의 법적 타당성을 더 고려했어야 옳았다고 본다.
정부·여당이 진정으로 잘못을 인정한다면 법을 앞세워 야당당사에 경찰을 투입시키기보다 어떻게 하면 야당과 국민들을 달래 사태를 수습할까를 먼저 생각하는 자기반성과 정치력이 발휘됐어야 할 것이다.
자신들이 앞장서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국민과 야당에게만 준법을 강요했던 「칼자루를 쥔 사람들의 법」 「법지상주의」가 3공과 5공에서 결국 무엇을 남겼는가.
정치보다 법을 앞세웠던 시절,정치가 실종되고 벌거벗은 공권력만이 횡행하던 사회로 돌아가자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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