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감잎차 보은사 감산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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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추석이 되었다. 흩어져 살던 형제자매들이 고향집을 찾는다. 송편을 빚고 감주를 나눠마시며 가물가물 잊혀져가는 어린 시절의 꿈을 찾는다. 휘영청 밝은 달 아래 가족들의 온기로 익어가는 밤은 잘익은 홍시만큼이나 달콤하고 부드럽다. 밤이 이슥해 초가을의 한기가 으스스 옷소매를 타고 진즉부터 아들의 눈치를 살피시던 어머니께서 손수 주전자에 물을 끓여들고 곁에 다가와 앉으신다.
『조석으로 찬바람이 불때는 뭐니뭐니해도 이게 최고니라. 감기도 예방하고 피로도 덜고 몸도 덥혀 주지』 잘 끓여 한김 나간 불에 잘게 썬 돌 감잎을 한 웅큼 집어넣고 주전자뚜껑을 덮은 다음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보시며 보이지 않게 한숨을 쉬신다.
『그래, 나이를 먹어가며 우리는 더이상 젊어질 수는 없지….』
십여분 모성으로 우려낸 연갈색 감잎차를 아들 앞에 밀어놓으시며 어머니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신다. 『차를 마시면 사람이 순해지고 곱게 늙는다더라』
모정을 전해주는 돌감잎차 제조법은 이렇다. 새순이 올라오는 이른봄이나 음력7월 돌감나무에서 한잎 한잎 정성으로 잎을 따 모아 먼저 감잎에 묻어있는 먼지 등을 깨끗이 씻어낸다. 그리고 무채처럼 가늘게 잎을 썰어 솥에 살포시 찐 다음 음건한 후 무쇠솥에서 한차례 덖어낸다.
유념할 점은 겉보기에는 돌감잎이 딱딱해 보이나 열에 약하므로 절대로 푹 찌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는 것이다. 쪄낸 잎을 말릴 때는 부채를 부쳐가며 건조를 도울 수도 있다.
돌감잎 차는 녹차와는 달리 카페인 성분이 전혀 함유되어 있지 않아 부작용의 염려가 없으며 비타민C가 풍부하다. 그래서 충북보은군일대의 주요 감 산지에 사는 주민들은 봄가을로 감잎차를 만들어두고 귀한 손님이 올 때 대접하거나 몸이 으슬으슬 몸살기운이 있고 콧물이 날 때 감잎차를 달여 마신다.
청풍명월의 고장 청주를 경유하여 속리산에 갈 때는 도중에 화양계곡을 찾아 천년을 하루같이 무심히 흐르는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도시생활에서 묻은 때를 씻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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