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청구 회신받는 데 25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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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부 부처의 캐비닛에 보관된 정보에 접근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기자가 '2000년 이후 남북회담 예산'을 통일부에 정보 공개 청구한 뒤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 정보의 일부나마 얻는 데 25일이 걸렸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자기 필요에 따라 홍보성 브리핑을 자청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이 장관 명의의 8쪽짜리 정보 공개 문서는 늦고 까다롭고 부실했다.

정보 공개 청구는 지난달 24일 남북회담에 국민의 혈세를 지나치게 쓰는 것 아니냐는 본지 기사에 대해 통일부가 왜곡 보도라며 법적 대응을 공언한 게 계기가 됐다. 통일부는 그러면서도 구체적 액수는 밝히길 거부했다.

중앙일보는 정보 공개 청구로 관련 내용 취재를 시도했다. 4월 27일 공보관실에 문제가 된 경제협력추진위 13차 회의의 예산과 2000~2006년 회담 비용 자료를 요구했다. 그렇지만 2주 뒤 통일부는 "비밀로 분류돼 있다"며 불가 통보를 했다.

본지는 "회담 전략이 아닌 비용 공개가 국익을 해친다고 볼 수 없다"며 이의신청을 했다. 통일부는 불가 결정을 뒤엎고 22일 일부 공개 결정을 내렸다.

◆ 부실 공개, 거짓 논란=공개된 자료에는 2000년 정상회담 이후 회담 행사에 쓴 돈이 모두 135억5200여만원이라고 나와 있다.

특히 남측에서 10차례 개최된 장관급 회담에는 모두 36억원이 들었다. 나흘간의 회담 한 번에 3억~4억원이 든 셈이다. 29일부터 서울에서 열릴 21차 회담도 비슷한 수준이다.

통일부는 "회담 비용이 계속 감소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추세는 그대로다. 13차 경협추진위 때 남측 대표단 40명이 이용한 서울~평양 간 전세기 비용도 통일부는 "보도된 8000만원의 절반 수준"이라면서도 액수는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공개 자료엔 전체 액수만 나와 있어 씀씀이를 따지기엔 역부족이다.

통일부는 정보 공개 예외 조항에 '남북 관계의 특수성'등 모두 117개 항목을 올려놓았다. 자의적 판단에 따라 정보 공개를 피할 구실이 많다는 것이다. 관련 정보를 제때 제공받기 어려운 점도 문제다. 언론의 요청에 한 달 가까이 걸린다면 일반 국민은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게 뻔한 상황이다.

국정홍보처는 기자실을 정부 청사에서 밀어내는 이른바 취재 선진화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정부의 정보 공개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이영종 기자

◆ 정보공개 청구=공공기관의 정보를 열람하거나 복사할 수 있는 제도. 공공기관의 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에 의해 보장되며 일반 국민이나 법인뿐 아니라 일정한 요건을 갖춘 외국인도 청구가 가능하다. 공공기관이 자발적 또는 법에 따른 의무사항으로 보유 정보를 공개하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게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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