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세종대왕함이 쏜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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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최대 1000㎞ 밖에 있는 표적 900여 개를 동시에 추적해 20여 개를 공격할 수 있는 작전수행 능력은 우리 군사력 건설의 전략적 방향성을 충분히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 해군의 작전반경이 북한 해군의 도발 억제를 중심으로 한반도 주변 해역을 통제할 수 있는 범위로 확대됐다. 따라서 우리 군의 전략적 역량이 동북아 및 세계적 차원의 안보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넓어지게 되고, 군사력의 투사능력이 향상된 것이다. 한국 경제의 높은 해외의존도 때문에 불가피하게 증대하는 해상 및 해외 자산의 위험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힘을 확충해 가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건조비용만 1조원이 들고 한 해 유지비용만 300억원이 소요되는 이지스함을 진수하고, 추가로 건조하겠다는 계획은 우리의 군사력 증강 원칙이 '국가의 능력(capabilty)에 기초한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탈냉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각국은 외부의 군사적 위협에 대비해 상대적 군사력의 비교우위를 전제로 한 군사력 증강 원칙을 포기했다. 대신 자국의 산업기술이나 예산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최상의 군사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세종대왕함 건조는 한국 정부도 국력.국위에 상응하는 군사력 증강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세종대왕함 진수를 계기로 우리는 전략적 방향성과 원칙을 확고하게 유지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우리 경제의 지속적 성장은 물론 안보전략적 시야를 한반도 내부에서 외부로 이동할 수 있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아울러 군사력 건설에 대한 주변국의 이해를 형성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의 국력수준에 기초해 건설하는 군사력이 한반도 안정은 물론 국제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러한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선 군사력 증강과 관련해 요구되는 '군사기술 및 전략 보안'을 잘 마련하고 지키는 가운데 세심한 군사외교 활동이 요구된다.

그런 측면에서 세종대왕함의 군사적 능력이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외부에 알려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최신 레이더를 장착해 3중 방공망을 갖추고 있다. 무기체계 탑재 설계를 맡은 미국 록히드마틴사와 함께 전 세계 이지스함을 공략하자는 제안도 받아 놓았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과연 국가이익에 유리한 것인지 아닌지를 곰곰 생각하게 한다. 차세대 전투기 F-22를 개발한 미국은 해당 민간기업이 기업 이익을 위해 자의적으로 이 전투기를 수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2015년까지 수출을 금지하는 법까지 제정했다.

지금은 세종대왕함의 군사적 위력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수출 가능성을 언급해 국민적 자부심을 제고하고 기술력을 과시할 때가 아니다. 그보다는 건조 과정에서 지득한 방위산업기술과 전략적 보안사항을 보호하는 데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울러 국가능력에 기초한 군사력 증강은 철저하게 '과군비(過軍備) 국가의 쇠락은 필연'이라는 원칙을 고려해야 한다.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저술한 폴 케네디는 능력을 초과해 군사력을 건설하는 국가는 필연적으로 몰락한다고 했다. 옛 소련과 북한이 과군비 국가의 전형이다. 세종대왕함 이후의 전략적 과제는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을 유지하고, 평화모드하에서도 국가위상에 맞는 적정 군사력을 갖추는 데 필요한 국민적 합의를 유지하는 데 있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