꼿꼿한 방송인 고 장기범 평전 나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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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을 한결같이 방송인으로 살아온 김동건 KBS 아나운서가 방송 입문의 계기로 꼽은 이가 고 장기범 아나운서다. 그의 단아하고 따뜻한 진행을 들으며 방송인의 꿈을 꾸게 됐다는 것이다. 어다 김동건 아나 뿐이랴. KBS 라디오가 유일한 매체이던 1950 ̄60년대, 재치와 유머로 국민에게 희망을 전달하던 장기범 아나운서의 아나운싱은 지금도 후배들에게 '정석'으로 회자되고 있다.

'사람이 곧 방송'이라는 신념으로 살다간 장기범 아나운서를 기리는 평전이 나왔다. KBS 아나운서 후배이자 현재 광운대 교수로 재직중인 김성호가 펴낸 '장기범 평전'(지식산업사, 256쪽, 1만3000원)이다.

김성호가 회고하는 장기범은 "훌륭한 진행능력뿐만 아니라 인간미까지 갖춘 방송인"이다. 사정이 어려운 후배에게 자신의 월급을 받도록 한 일화나, 거리의 라이터 장수와 허물없이 술친구로 지낸 사연 등이 실례다. 권력기관의 압력에도 진실보도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사적으로는 관용차를 사용하지 않는 원칙주의자였다. 그러면서도 마이크 앞에 서면 유머와 열정이 빛을 발했다. 배고프고 서럽던 시절, 그가 진행한 '스무고개'와 '재치문답'은 서민의 귀한 벗이었다.

현기증나는 미디어의 발전 속에 일부 아나운서는 연예인을 능가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PD.기자.아나운서 등은 많은 이가 선망하는 직업이다. 저자는 '방송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닌 21세기에 과연 "가슴속에 남은 방송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시스템이 아무리 발달하고 복잡해지더라도 방송은 늘 사람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시대를 앞서간 한 방송인을 통해 성찰한다.

저자 김성호는 70년 KBS 아나운서로 방송에 입문, PD를 거쳐 2003년부터 KBSi 사장으로 3년여 재임했다. 올초 36년간의 방송이력을 마감하고 현재 광운대학교 미디어영상학부 객원교수로 옮겼다. '한국방송인물지리지'등 10여 권의 저서가 있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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